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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nfession

( 고백 )

by Leo Tolstoy




In my search for answers to life's questions I experienced just what is felt by a man lost in a forest.

인생의 문제의 대답을 위한 탐구에서 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느끼는 바로 그것을 경험하였다.

He reaches a glade, climbs a tree, and clearly sees the limitless distance, but sees that his home is not and cannot be there; then he goes into the dark wood and sees the darkness, but there also his home is not.

그는 숲 속의 빈터에 도달하고, 나무에 오른다 그리고 끝이 없이 먼 곳을 막힘 없이 바라본다, 그러나 그의 집은 없으며 그곳에 있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어두운 숲 속에 들어가서 어두움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곳 또한 그의 집은 아니다.

So I wandered in that wood of human knowledge, amid the gleams of mathematical and experimental science which showed me clear horizons but in a direction where there could be no home, and also amid the darkness of the abstract sciences where I was immersed in deeper gloom the further I went, and where I finally convinced myself that there was, and could be, no exit.

그렇게 나는 인간 지식의 숲 속에서 방황하였다, 집은 있지 않은 방향에서 나에게 깨끗한 수평선을 보여 주는 수학적인 그리고 실험적인 과학의 불 빛 속에서, 그리고 또한 내가 더 멀리 갈수록 나는 더 깊이 컴컴하게 가라 앉는 추상적 과학의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였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곳에는 출구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Yielding myself to the bright side of knowledge, I understood that I was only diverting my gaze from the question. However alluringly clear those horizons which opened out before me might be, however alluring it might be to immerse oneself in the limitless expanse of those sciences, I already understood that the clearer they were the less they met my need and the less they applied to my question.

밝은 측면의 지식에 나를 맡기면서, 나는 오직 나의 시선을 문제에서 딴 데로 돌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 앞에 펼쳐진 그들 수평선이 아무리 매혹적으로 깨끗하다 할지라도, 그들 과학의 끝없이 광활함에 침잠하는 것이 아무리 매혹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미 그것들이 깨끗하면 할 수록 그것들은 나의 필요에 더욱 못 미치고 나의 질문에 더욱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I know," said I to myself, "what science so persistently tries to discover, and along that road there is no reply to the question as to the meaning of my life." In the abstract sphere I understood that notwithstanding the fact, or just because of the fact, that the direct aim of science is to reply to my question, there is no reply but that which I have myself already given: "What is the meaning of my life?" "There is none." Or: "What will come of my life?" "Nothing." Or: "Why does everything exist that exists, and why do I exist?" "Because it exists."

나는 생각했다, “나는 과학이 그렇게 집요하게 찾으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면 나의 인생의 의미에 대한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것을 안다.” 추상적인 범주에서 나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려 함이 과학의 직접적인 목적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냥 그러한 사실이기 때문이라도, 나 자신이 이미 내어 놓은 것 외의 대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또는: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되는 것이 없다.” 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존재하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Inquiring for one region of human knowledge, I received an innumerable quantity of exact replies concerning matters about which I had not asked: about the chemical constituents of the stars, about the movement of the sun towards the constellation Hercules, about the origin of species and of man, about the forms of infinitely minute imponderable particles of ether; but in this sphere of knowledge the only answer to my question, "What is the meaning of my life?" was: 'You are what you call your "life"; you are a transitory, casual cohesion of particles. The mutual interactions and changes of these particles produce in you what you call your "life". That cohesion will last some time; afterwards the interaction of these particles will cease and what you call "life" will cease, and so will all your questions. You are an accidentally united little lump of something. That little lump ferments. The little lump calls that fermenting its "life". The lump will disintegrate and there will be an end of the fermenting and of all the questions.' So answers the clear side of science and cannot answer otherwise if it strictly follows its principles.

인간의 지식의 한 지역을 요청한 결과, 나는 내가 질문하지 않은 문제들에 관하여 정확한 수없이 많은 양의 정확한 답변들을 받았다: 별의 화학적 성분에 대하여, 헤라클레스 성운을 향한 해의 움직임에 대해서, 종과 사람의 기원에 대해서, 무한대로 미세한 무게측정이 불가능한 에테르의 입자들의 형태에 대하여; 그러나 이런 지식의 범주에서 나의 질문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나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는: ‘당신은 당신이 당신의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신은 입자들의 일시적이며, 우연한 덩어리이다. 이러한 입자들의 상호 작용과 변화들이 당신이 당신의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 안에 만든다. 그 덩어리들은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이다; 얼마 뒤에 이들 입자들의 상호작용은 멈출 것이며, 당신의 소위 “인생”은 멈출 것이며, 당신의 모든 질문도 그렇게 될 것이다. 당신은 우연히 결합된 어떤 것의 작은 덩어리이다. 그 작은 덩어리가 발효한다. 그 조그만 덩어리는 그 발효된 것을 그의 “인생”이라 부른다. 덩어리는 분해되고 발효는 끝이 날 것이며, 모든 질문도 끝이 날 것이다.’ 그렇게 과학의 명백한 측면은 대답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원칙을 엄격하게 따른다면 다른 방식으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From such a reply one sees that the reply does not answer the question. I want to know the meaning of my life, but that it is a fragment of the infinite, far from giving it a meaning destroys its every possible meaning. The obscure compromises which that side of experimental exact science makes with abstract science when it says that the meaning of life consists in development and in cooperation with development, owing to their inexactness and obscurity cannot be considered as replies.

그러한 대답으로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무한한 것의 파편이라는 것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가능한 모든 의미를 파괴하여 버린다. 인생의 의미는 발전에 그리고 발전과의 협력에 있다고 말할 때 그러한 측면의 실험적인 정확한 과학이 추상적 과학과 만들어 내는 불투명한 타협은, 부정확함과 불투명함으로 인해서 답변들이라고 여겨질 수가 없다.

The other side of science-the abstract side-when it holds strictly to its principles, replying directly to the question, always replies, and in all ages has replied, in one and the same way: 'The world is something infinite and incomprehensible part of that incomprehensible "all".' Again I exclude all those compromises between abstract and experimental sciences which supply the whole ballast of the semi-sciences called juridical, political, and historical. In those semi-sciences the conception of development and progress is again wrongly introduced, only with this difference, that there it was the development of everything while here it is the development of the life of mankind. The error is there as before: development and progress in infinity can have no aim or direction, and, as far as my question is concerned, no answer is given.

과학의 다른 측면은-추상적 측면-그것이 원리를 엄격히 고수할 때, 질문에 직접 대답을 함으로서 언제나 대답을 하며, 그리고 모든 나이에서 똑같은 한가지로 대답을 하였다: ‘세상은 무한한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될 수 없는 “모든 것”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시, 나는 법률, 정치, 그리고 역사 과학이라고 불리는 유사 과학의 전체적인 안정성을 부여하는 추상적 및 실험적인 과학들 사이의 그 모든 타협들을 배제한다. 그들 유사 과학에서는 발전과 진보의 개념이 다시금 그릇되게 소개 되었는데, 오직 이러한 차이를 가진다, 이곳에 인류의 인생의 발전이 있다면 그곳에는 모든 것의 발전이 있다. 이전처럼 오류는 존재한다: 무한한 발전과 진보는 아무런 목적이나 방향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나의 질문과 관련되는 한, 아무런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In truly abstract science, namely in genuine philosophy- not in that which Schopenhauer calls 'professorial philosophy' which serves only to classify all existing phenomena in new philosophic categories and to call them by new names-where the philosopher does not lose sight of the essential question, the reply is always one and the same -- the reply given by Socrates, Schopenhauer, Solomon, and buddha.

진정으로 추상적인 과학에서, 즉 진정한 철학에서는-모든 존재하는 현상들을 새로운 철학적인 범주로 분류하고 그들을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는 쇼펜하우어가 일컫는 ‘직업적 철학’에서가 아니라-철학자가 근본적인 질문을 간과하지 않고 있는데, 대답은 언제나 딱 한가지이다-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솔로몬, 그리고 부처가 내놓은 대답이다.

"We approach truth only inasmuch as we depart from life", said Socrates when preparing for death. "For what do we, who love truth, strive after in life? To free ourselves from the body, and from all the evil that is caused by the life of the body! If so, then how can we fail to be glad when death comes to us?

‘우리는 오직 우리가 인생으로부터 떠날 때 진리에 접근한다’라고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준비할 때 말했다. “무엇을 위해, 진리를 사랑하는 우리는, 인생에서 애를 쓰는가? 우리를 육신에서, 그리고 육신의 생명에서 초래되는 모든 악에서부터 자유로워 지려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올 때, 우리는 즐거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The wise man seeks death all his life and therefore death is not terrible to him."

‘지혜로운 자는 일평생을 통해 죽음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에게 무섭지 않다.’

And Schopenhauer says: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Having recognized the inmost essence of the world as will, and all its phenomena -- from the unconscious working of the obscure forces of Nature up to the completely conscious action of man -- as only the objectivity of that will, we shall in no way avoid the conclusion that together with the voluntary renunciation and self-destruction of the will all those phenomena also disappear, that constant striving and effort without aim or rest on all the stages of objectivity in which and through which the world exists; the diversity of successive forms will disappear, and together with the form all the manifestations of will, with its most universal forms, space and time, and finally its most fundamental form -- subject and object. Without will there is no concept and no world. Before us, certainly, nothing remains. But what resists this transition into annihilation, our nature, is only that same wish to live-Wille zum Leben-which forms ourselves as well as our world. That we are so afraid of annihilation or, what is the same thing, that we so wish to live, merely means that we are ourselves nothing else but this desire to live, and know nothing but it. And so what remains after the complete annihilation of the will, for us who are so full of the will, is, of course, nothing; but on the other hand, for those in whom the will has turned and renounced itself, this so real world of ours with all its suns and milky way is nothing.'

‘세상의 가장 깊은 본질을 ‘의지’로서, 그리고 그 모든 현상들을-자연의 애매한 힘의 무의식적인 작동에서 사람의 완전히 의식적인 행위까지-그 의지의 객체로 인식하므로, 우리는 의지의 자의적인 포기와 자기 파멸과 함께 그 모든 현상들, 즉, 객체 안에서 그리고 객체를 통하여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단계들에서 목적이나 휴식이 없는 부단한 투쟁과 노력, 또한 사라진다는 결론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연속적인 형태의 다양성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형태와 함께, 의지에 대한 모든 표식들, 가장 일반적인 형태, 공간 및 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주체와 객체마저도. 의지가 없다면 아무런 개념도 세상도 없다. 우리들 앞에는, 확실히,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멸망으로의 전이에 저항하는 것, 즉 우리의 본성은 오직 그와 같은 살고자 하는 욕구이다-Wille zum Leben-그것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구성한다. 우리가 멸망을 너무나 두려워 한다는 것 또는, 똑같은 것으로서, 우리가 너무나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은 이런 살고자 하는 욕망일 뿐이며, 그것만 알 뿐이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의지의 완전한 멸망 뒤에 남아 있는 것은, 의지로 그토록 가득 차 있는 우리에게는, 물론,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들에게서 의지가 떠났거나 그 자체를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태양들과 은하수가 있는 우리의 그토록 사실적인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Vanity of vanities", says Solomon-'vanity of vanities-all is vanity. What profit hath a man of all his labor which he taketh under the sun? One generation passeth away, and another generation commeth: but the earth abideth for ever....The thing that hath been, is that which shall be; and that which is done is that which shall be done: and there is no new thing under the sun. Is there anything whereof it may be said, See, this is new? it hath been already of old time, which was before us. There is no remembrance of former things; neither shall there be any remembrance of things that are to come with those that shall come after. I the Preacher was King over Israel in Jerusalem. And I gave my heart to seek and search out by wisdom concerning all that is done under heaven: This sore travail hath God given to the sons of man to be exercised therewith. 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I communed with my own heart, saying, Lo, I am come to great estate, and have gotten more wisdom than all they that have been before me over Jerusalem: yea, my heart hath great experience of wisdom and knowledge. And I gave my heart to know wisdom, and to know madness and folly: I perceived that this also is vexation of spirit. For in much wisdom is much grief: and he that increaseth knowledge increaseth sorrow.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솔로몬이 말한다-‘헛되고 헛되도다-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I said in my heart, Go to now, I will prove thee with mirth, therefore enjoy pleasure: and behold this also is vanity. I said of laughter, It is mad: and of mirth, What doeth it? I sought in my heart how to cheer my flesh with wine, and while my heart was guided by wisdom, to lay hold on folly, till I might see what it was good for the sons of men that they should do under heaven the number of the days of their life. I made me great works; I builded me houses; I planted me vineyards; I made me gardens and orchards, and I planted trees in them of all kinds of fruits: I made me pools of water, to water therefrom the forest where trees were reared: I got me servants and maidens, and had servants born in my house; also I had great possessions of herds and flocks above all that were before me in Jerusalem: I gathered me also silver and gold and the peculiar treasure from kings and from the provinces: I got me men singers and women singers; and the delights of the sons of men, as musical instruments and all that of all sorts. So I was great, and increased more than all that were before me in Jerusalem: also my wisdom remained with me. And whatever mine eyes desired I kept not from them. I withheld not my heart from any joy....Then I looked on all the works that my hands had wrought, and on the labour that I had laboured to do: and, behold, all wa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and there was no profit from them under the sun. And I turned myself to behold wisdom, and madness, and folly.... But I perceived that one even happeneth to them all. Then said I in my heart, As it happeneth to the fool, so it happeneth even to me, and why was I then more wise? then I said in my heart, that this also is vanity. For there is no remembrance of the wise more than of the fool for ever; seeing that which now is in the days to come shall all be forgotten. And how dieth the wise man? as the fool. Therefore I hated life; because the work that is wrought under the sun is grievous unto me: for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Yea, I hated all my labour which I had taken under the sun: seeing that I must leave it unto the man that shall be after me.... For what hath man of all his labour, and of the vexation of his heart, wherein he hath laboured under the sun? For all his days are sorrows, and his travail grief; yea, even in the night his heart taketh no rest. this is also vanity. Man is not blessed with security that he should eat and drink and cheer his soul from his own labour.... All things come alike to all: there is one event to the righteous and to the wicked; to the good and to the evil; to the clean and to the unclean; to him that sacrificeth and to him that sacrificeth not; as is the good, so is the sinner; and he that sweareth, as he that feareth an oath. This is an evil in all that is done under the sun, that there is one event unto all; yea, also the heart of the sons of men is full of evil, and madness is in their heart while they live, and after that they go to the dead. For him that is among the living there is hope: for a living dog is better than a dead lion. For the living know that they shall die: but the dead know not any thing, neither have they any more a reward; for the memory of them is forgotten. also their love, and their hatred, and their envy, is now perished; neither have they any more a portion for ever in any thing that is done under the sun."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였으리라.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였다.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So said Solomon, or whoever wrote those words.*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누가 그 말씀들을 기록하였던지.

And this is what the Indian wisdom tells:

그리고 이것은 인도 사람의 지혜가 말하는 것이다:

Sakya Muni,* a young, happy prince, from whom the existence of sickness, old age, and death had been hidden, went out to drive and saw a terrible old man, toothless and slobbering. The prince, from whom till then old age had been concealed, was amazed, and asked his driver what it was, and how that man had come to such a wretched and disgusting condition, and when he learnt that this was the common fate of all men, that the same thing inevitably awaited him-the young prince-he could not continue his drive, but gave orders to go home, that he might consider this fact. So he shut himself up alone and considered it. And he probably devised some consolation for himself, for he subsequently again went out to drive, feeling merry and happy. But this time he saw a sick man. He saw an emaciated, livid, trembling man with dim eyes. The prince, from whom sickness had been concealed, stopped and asked what this was. And when he learnt that this was sickness, to which all men are liable, and that he himself -- a healthy and happy prince -- might himself fall ill tomorrow, he again was in no mood to enjoy himself but gave orders to drive home, and again sought some solace, and probably found it, for he drove out a third time for pleasure. But this third time he saw another new sight: he saw men carrying something. 'What is that?' 'A dead man.' 'What does dead mean?' asked the prince. He was told that to become dead means to become like that man. The prince approached the corpse, uncovered it, and looked at it. 'What will happen to him now?' asked the prince. He was told that the corpse would be buried in the ground. 'Why?' 'Because he will certainly not return to life, and will only produce a stench and worms.' 'And is that the fate of all men? Will the same thing happen to me? Will they bury me, and shall I cause a stench and be eaten by worms?' 'Yes.' 'Home! I shall not drive out for pleasure, and never will so drive out again!'

어리고 행복한 왕자인 석가모니는, 그에게서 질병, 늙음, 그리고 죽음의 존재가 숨겨져 있었는데, 가마를 타고 나갔다 그리고 너무나도 늙은 노인을 보았는데, 이빨도 없었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왕자에게는, 늙는 일이 숨겨져 있었으므로, 놀라와 했다, 그리고 그의 가마꾼에게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사람이 그렇게 비참하고 구역질 나는 모양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의 운명이며, 똑같은 일이 그에게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배웠을 때-그 어린 왕자는-가마를 계속 타고 갈 수 없었다, 그는 집에 가자고 명령했으니 이 사실을 생각해보려 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들어박혀서 그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스스로 어떤 위로를 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곧 다시 가마를 타고 나갔으며, 즐겁고 행복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병자를 보았다. 그는 희미한 눈으로 초췌하고, 검푸르며, 떨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질병이 그에게는 감추어져 있었던지라, 왕자는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그가 이것은 질병이며, 모든 사람들이 걸릴 수 있고, 그리고 그 자신도-건강하고 행복한 왕자-내일은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는, 다시 자신을 즐길 기분이 아니어서,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리고 다시 약간의 위안을 찾았다, 그리고 아마도 찾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 번째로 즐거움을 찾으러 밖에 나갔다. 그러나 이 세 번째는 그가 다른 새로운 광경을 보았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저게 뭡니까?’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왕자가 물었다. 그는 죽는다는 것은 저 사람처럼 되는 것이라고 들었다. 왕자는 시체에 다가가서, 거적을 들고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가 어떻게 됩니까?’ 왕자가 물었다. 왕자는 그가 땅에 묻힌다고 들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확실히 생명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오직 악취와 벌레만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운명입니까? 똑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납니까? 그들이 나를 묻을 것이며 그리고 나도 악취를 내고 벌레가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집으로 가요! 나는 재미보기 위해서 가마를 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결코 다시 그렇게 타고 나가지 않겠습니다!’

And Sakya Muni could find no consolation in life, and decided that life is the greatest of evils; and he devoted all the strength of his soul to free himself from it, and to free others; and to do this so that, even after death, life shall not be renewed any more but be completely destroyed at its very roots. So speaks all the wisdom of India.

그리고 석가모니는 인생에서 아무런 위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삶이 가장 큰 악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것에서 벗어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벗어나게 하고자 그의 모든 영혼의 모든 힘을 쏟았다; 그는 이일을 하였으니, 심지어 죽은 뒤에도 인생이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그러나 완전히 그 뿌리부터 파괴되도록 하였다. 인도의 모든 지혜가 이렇게 말한다.

These are the direct replies that human wisdom gives when it replies to life's question.

이것들이 인생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할 때 인간의 지혜가 주는 직접적인 대답들이다.

"The life of the body is an evil and a lie. Therefore the destruction of the life of the body is a blessing, and we should desire it," says Socrates.

‘육신의 생명은 악이며 거짓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축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원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Life is that which should not be -- an evil; and the passage into Nothingness is the only good in life," says Schopenhauer.

‘인생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악이다; 그리고 무(無)로의 이동이 인생의 유일한 선이다.’ 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All that is in the world -- folly and wisdom and riches and poverty and mirth and grief -- is vanity and emptiness. Man dies and nothing is left of him. And that is stupid," says Solomon.

‘세상에 있는 모든 것-어리석음과 지혜와 부와 빈곤과 즐거움과 슬픔-은 헛되며 비어 있음이다. 사람은 죽고 그에게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어리석다,’ 라고 솔로몬은 말한다.

"To live in the consciousness of the inevitability of suffering, of becoming enfeebled, of old age and of death, is impossible -- we must free ourselves from life, from all possible life," says Buddha.

‘피할 수 없는 고통, 쇠약해짐, 노쇠함과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우리는 반드시 스스로 생명, 모든 가능한 생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라고 석가는 말한다.

And what these strong minds said has been said and thought and felt by millions upon millions of people like them. And I have thought it and felt it.

그리고 이들 강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말한 것은 그들과 같은 수백만에 또 수백만 명에 의해 말해졌으며 생각되어 졌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그것을 생각하였고 느꼈다.

So my wandering among the sciences, far from freeing me from my despair, only strengthened it. One kind of knowledge did not reply to life's question, the other kind replied directly confirming my despair, indicating not that the result at which I had arrived was the fruit of error or of a diseased state of my mind, but on the contrary that I had thought correctly, and that my thoughts coincided with the conclusions of the most powerful of human minds.

이렇게 하여 과학들 안에서 내가 방황한 것은, 나를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기는 커녕, 오히려 절망을 강화시켜 주었다. 한 종류의 지식은 인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며, 다른 한 종류는 즉각 나의 절망을 확인하는 대답을 하였다, 그것은 내가 도달한 결과가 오류의 열매이거나 나의 마음이 병든 상태라서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바르게 생각했으며, 그리고 나의 생각들은 인간의 마음들에 있어서 가장 힘있는 사람들의 결론과 일치하였다.

It is no good deceiving oneself. It is all -- vanity! Happy is he who has not been born: Death is better than life, and one must free oneself from life.

자신을 속이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 그것은 모두-헛되다! 행복은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있다: 죽음이 생명보다 낫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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