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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한국의 종교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의 환경과 생활형편에 적합한 종교적 신앙과 의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주위의 다른 민족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그들로부터 새로운 외래 종교를 받아들여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종교사상에 맞도록 그것들을 변용시켜왔다. 오늘날 한국에는 국교(國敎)가 없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1990년의 정부통계에 따르면 한국에는 각종 교단(敎團)의 수가 152개이고, 교당(敎堂)의 수는 4만 7,553개이며, 신도의 수는 종교인구 대비로 볼 때 불교(46.9%), 기독교(48.5%, 이중 개신교 37.7%, 천주교 10.8%), 유교(2.8%), 원불교(0.5%), 천도교(0.2%), 대종교(0.1%), 기타 종교(2.8%)로 나타났다. 또 같은 해의 한국 갤럽 조사연구소가 실시된 한국 종교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전체(1,990명)의 49%가 종교를 믿고 있으며, 72% 이상이 종교생활을 해보았거나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적 신앙과 의례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의 고대 원시신앙은 고조선의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천신(天神)을 믿고 산천과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며 무속(巫俗)을 행하는 것이었다. 단군신화의 환인은 천제였으며 고대 한민족의 신앙 대상이었다. 단군도 인간으로 화신하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I天)은 모두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천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의(祭儀)에는 집단적인 가무와 음주가 행해졌는데, 당시의 사람들은 그러한 의례를 통하여 신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었다. 또 고대 한국인의 원시신앙은 지금까지도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이어져내려오고 있는 무속과 거의 일관된 사고의 구조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무속의 원형으로 생각되고 있다.

삼국이 정립된 뒤에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고 도교를 받아들여 태학과 국학을 세우고 태학박사·오경박사·의(醫)·역(易) 박사제도를 두어 귀족 자제들에게 유교의 경전을 가르쳤다. 특히 신라에서는 유교·불교·도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풍류도의 단체정신이 매우 강한 화랑도(花郞徒)의 청소년 집단을 만들어 교육·군사·사교 단체의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삼국통일에 크게 이바지했다. 통일신라는 사찰·불상·탑 등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룩하여 그 유물이 지금까지 전해져서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많다. 불교의 교세는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거란·여진·몽고의 침입에 대한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성격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불교가 국교로서 더욱 보호되고 장려되었다. 〈8만대장경〉의 조판은 그러한 호국불교의 염원에서 착수된 것이며, 인쇄술의 발달을 자극하여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에서는 유교와 한문학의 교양을 지닌 사람을 등용하기 위한 과거제(科擧制)를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승려에게 출세의 길을 마련해주기 위해 승과(僧科)라는 국가시험제도를 두었고, 사원에 토지와 노비를 급여하고 면세와 면역의 특전을 베풀어 사원경제가 팽창했으며, 승려들은 귀족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또 신라 말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풍수지리(風水地理)사상이 크게 유행했다. 이것은 지리도참설이라고도 하는데, 귀족들의 생활원리에 침투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과거제도에 지리과(地理科)가 생기기도 했다.

조선왕조는 처음부터 유교를 국가의 지배적인 통치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의 원리에 따라 문물제도를 갖추었다. 중앙에는 성균관을 설치하고 지방에는 향교와 서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 제사를 행했다. 유교는 종교적 신앙과 윤리적 실천의 2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유교의 종교적 신앙과 의례는 천지의 교사(郊社)에 대한 제사와 조상의 조묘(祖廟)에 대한 제사 및 성현들의 문묘(文廟)에 대한 제사로 집약되었다. 이러한 제사 의례는 형식을 매우 중요시했다. 삼강오륜과 같은 유교의 윤리적 실천 강령을 행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고 실행에 옮긴 것은 주로 양반의 상류계층이고, 평민인 일반 민중들은 오랜 전통의 관행에 따라 천신을 비롯하여 산천과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고 무속을 행했다. 유학자들은 옥황상제·칠성·염라대왕·사해용신·신당 등을 신봉하는 도교적 소격서(昭格署)의 혁파를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민간에서는 물론이고 왕실에서조차도 도교의 신봉이 여전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관념적·형식적인 주자학(朱子學)에 반대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실사구시(實事求是)·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는 실학파가 나오고, 서양의 천주교도 온갖 박해와 순교 끝에 수용되었다. 이어서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의 개신교들이 들어와 한국인의 종교적 신앙뿐만 아니라 서양교육과 의술을 전파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한국의 천주교 전래는 중국 북경의 예수회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간접적인 전파가 이루어졌으나, 17세기초부터 들어온 한역서학서를 통해 서학을 연구하는 가운데 천주교 신앙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입국하면서 천주교의 전파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개신교도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K. F. A. 귀츨라프, A. 윌리엄슨, R. J. 토머스 등에 의해 성서의 번역과 배포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1885년 일본에서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의 전복음셔언〉을 가지고 H. G. 언더우드와 H. G. 아펜젤러가 입국하면서 각 교파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교육·의료 사업과 농촌운동을 실시하고, 조선의 봉건사회를 개화시키며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의 초기 천주교와 개신교는 조선사회 전통과의 이질감 때문에 심한 박해를 받았으나, 일제강점기 때 기독교회와 천주교의 반일성과 애국성, 그리고 조선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선교사들을 통하여 민족교회로서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성장과 함께 교파가 분열되고,이에 반한 소종파운동이 일어나게 되자 곧 교회일치연합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접하게 되면서 상실된 자아확인과 정신적인 피난처를 위한 종교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여 한국 기독교는 놀랄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교회의 양적 성장은 그 내적 순수성과 도덕적 차원, 신의(神意)를 토대로 한 사회정의실현의 주체적 원동력이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일부 교회와 교인들의 기복적 신앙, 반지성적 무아상태의 신앙, 교회의 상업화·기업화·대중화, 일부 교역자의 부패 등이 부조리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1990년 현재 한국의 기독교와 천주교회의 신도수는 무려 835만 4,679명으로 전체 인구의 19.1%에 달하고 있다. 교회의 이같은 수적인 확장과 발전은 민족교육 및 정신순화 기관으로서, 그리고 사회가치의 전도를 바로잡는 자로서의 긍정적 역할에 일익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혼란이 고조되었던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에는 현실생활의 불안과 위기의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정감록(鄭鑑錄)과 십승지(十勝地) 기타 후천개벽사상들이 민간에 침투하여 여러 계통의 신흥종교 교단들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신흥종교는 계통으로 볼 때 동양의 유교·불교·도교 계통과 서양의 그리스도교 계통에서 파생된 것과 단군계를 비롯하여 동학계·무속숭신계·증산계·봉남계 등 한국에서 발생한 것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통이 국내·외, 동·서양의 어느 것이든지 간에 한국의 신흥종교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이념이 첨가되었거나 기존의 교리를 고치고 바꾸어 새로운 내용의 것으로 변용된 것들이다. 이러한 신흥종교들은 일부 기성종교들의 진부한 신앙을 지양하고 신도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동시에 민족정기를 북돋아주는 기능을 가지기도 하지만, 말세의 구제와 이상세계의 개벽을 내세워 혹세무민하고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하는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총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종교는 역사상 왕조의 교체와 더불어 새로운 지배이념으로 등장해왔고, 이에 따라 서로 다른 종교들 사이에 알력과 갈등이 계속되었으며, 외래의 종교라도 한국에서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무속과 여러 종교사상들이 습합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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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