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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인가?

by Leo Tolstoy


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The cause of the falsehood into which the art of our society has fallen was that upper-class people, having lost faith in the truths of the so-called Christian teaching of the Church, did not dare to accept true Christianity in its real and chief meaning — as sonship to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 and went on living without any faith, trying to make up for the absence of faith, some by hypocrisy, pretending that they still believed in the absurdities of Church faith, others by the bold proclamation of their unbelief, others by refined scepticism, and still others by a return to the Greek worship of beauty, acknowledging the legitimacy of egoism and elevating it into a religious teaching. 우리 사회의 예술이 빠져 든 거짓의 이유는 상류 계급 사람들이, 소위 교회의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의 진리들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였으며, 사실적이며 핵심적인 의미 — 사람들의 하나님의 자녀 됨 및 형제애—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무런 신앙도 없이 삶을 계속하였으며, 신앙의 결여를 메우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위선으로, 그들이 여전히 교회의 부조리함을 믿는 척 가장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불신앙을 대담하게 선언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세련된 회의주의에 의해, 그리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의 미에 대한 숭배로 회귀함으로, 이기주의의 정당성을 용인하고 그것을 종교적 가르침으로 추켜 올렸기 때문이다.
The cause of the disease was the non-acceptance of Christ’s teaching in its true — that is, its full — meaning. The cure of the disease lies in one thing only — the acknowledgement of this teaching in all its meaning. This acknowledgement is not only possible in our time, but also necessary. In our time it is no longer possible for a man who has come up to the level of knowledge in our time, whether he be a Catholic or a Protestant, to say that he believes in the dogmas of the Church — in God as Trinity, in Christ as divinity, in the redemption, and so on — and it is no longer possible for him to be satisfied by the proclaiming of unbelief, scepticism, or a return to egoism and the worship of beauty, and above all it is no longer possible to say that we do not know the true meaning of Christ’s teaching. The meaning of this teaching has not only become accessible to all people of our time, but all human life in our time is pervaded by the spirit of this teaching and,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is guided by it. 질병의 원인은 진정한 — 즉, 완전한 — 의미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음이었다. 질병의 치료는 오직 한 가지 — 이 가르침을 그 의미 모두로 인식함 — 에 놓여 있다. 이런 인식은 우리 시대에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 우리 시대는 그가 가톨릭교인이든 개신교인이든 우리시대의 지식 수준에 이른 사람에게 있어서 교회의 교리들 —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 신으로서의 그리스도, 구원, 등 — 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불신앙, 회의론, 혹은 그가 이기주의 및 미의 숭배에 회귀함을 선언함으로써 만족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참된 의미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 가르침의 의미는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인간의 삶은 이 가르침의 정신으로 스며들어 있으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의 인도를 받고 있다.
However differently in form the people of our Christian world define the destiny of man, whether they recognize it as the progress of mankind in whatever sense, as the uniting of all people into a socialist state or commune, whether they recognize this destiny as a world federation, whether they recognize it as union with a fantastic Christ or the union of mankind under the guidance of one Church — however diverse in form these definitions of the destiny of human life may be, all people of our time recognize that the destiny of man is the good; and the highest good in life accessible to people of our world is attained in their uniting together. 우리의 그리스도교적인 세상의 민중들이 아무리 형식상 달리 사람의 운명을 정의하더라도, 그들이 어떤 의미에서든 인류의 진보로서, 모든 사람들을 사회주의 국가 혹은 공동체로서 인식하든, 이런 운명을 세계 연합으로 인식하든, 그것을 광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혹은 한 교회의 인도 하에 인류의 연합이든 — 인간의 삶의 운명에 대한 이 정의들이 형식상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사람의 운명의 선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 세계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삶의 최고의 선은 그들이 함께 연합함으로 달성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However hard upper-class people may try — sensing that their significance is based on their separating themselves, as wealthy and learned, from working people, the poor and unlearned — to invent new world views which might enable them to keep their advantages, whether it be the ideal of a return to the old days, or of mysticism, Hellenism, supermanhood, they must recognize, whether they will or no, the truth that affirms itself on all sides in life, consciously and unconsciously, that our good lies only in the union and brotherhood of men. 상류 계급의 사람들이 — 그들의 중요성이 그들이 스스로를, 부유하며 유식한 사람들로서, 노동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로부터 분리함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서 — 그들의 이점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 그것이 구시대로의 회귀의 이상이든, 혹은 신비주의, 헬레니즘, 초인간의 이상이든, 그들은 반드시, 원하든 말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자명한 진리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즉 우리의 선은 오직 사람들의 연합과 형제애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Unconsciously this truth is affirmed by the establishing of means of communication (telegraph, telephone, the press), and the ever-increasing availability of the goods of this world to all people; consciously it is affirmed by the destruction of superstitions that divide people, by the spreading of the truths of knowledge, by the expression of the ideals of the brotherhood of men in the best works of art of our time. 무의식적으로 이 진리는 통신수단 (전보, 전화, 언론)의 확립, 이 세상의 상품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증가하는 용이성으로 확언된다; 의식적으로 진실들 및 지식의 전파에 의해, 우리 시대 예술의 가장 훌륭한 작품들 안에서 사람들의 형제애의 이상들의 표현에 의해, 사람들을 갈라 놓는 미신들의 파괴에 의해 확언된다.
Art is a spiritual organ of human life, and it cannot be destroyed, and that is why, despite all the efforts of upper-class people to conceal the religious ideal by which mankind lives, that ideal is being recognized more and more by people, and more and more often is being partially expressed by science and art amid our perverted society. More and more often since the beginning of this century there have appeared, in literature and painting, works of the highest religious art, pervaded by the true Christian spirit, as well as works of popular everyday art accessible to all. So that art itself knows the true ideal of our time and is striving towards it. On the one hand, the best works of art of our time convey feelings that draw towards the union and brotherhood of men (such are the works of Dickens, Hugo, Dostoevsky; in painting, of Millet, Bastien-Lepage, [113] Jules Breton, Lhermitte and others); on the other hand, they strive to convey feelings not proper only to upper-class people, but such as may unite all men without exception. Such works are still few, but the need for them is already understood. Besides that, in recent times there have been more and more frequent attempts at popular editions of books and pictures, at generally accessible concerts and theatres. All this is still very far from what it ought to be, but one can already see the direction in which art is striving of itself in order to come out on the proper path. 예술은 인간의 삶의 영적 기관이며, 그것은 파괴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왜, 상류 계급 사람들이 인류가 살아 가는 종교적 이상을 숨기려는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상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식되고 있으며, 더욱 더 자주 우리의 왜곡된 사회 가운데 과학 및 예술에 의해 부분적으로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욱 더 빈번히 이 세기의 시작 이후, 문학 및 미술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이 충만한 최고의 종교적 예술 작품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대중의 일상 예술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리하여 예술 자체는 우리시대의 참된 이상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향해 분투하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예술 작품들이 사람들의 연합 및 형제애를 향해 이끄는 느낌들을 전달하며 (예로, 디킨즈, 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 미술에서, 밀레, 바스티엥 레파지, 줄리 브레튼, 레미트 등),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상류 계급 사람들에게 적합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예외 없이 연합할 수 있는 느낌들을 전달하여 애쓴다. 그러한 작품들은 아직 적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한 필요는 이미 이해되고 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최근 시기에 서적들 및 그림들의 대중 출판, 일반인이 이용 가능한 연주회들 및 극장들에 대한 더욱 더 빈번한 시도들이 있어 왔다. 이 모든 것은 여전히 당연해야 할 수준에 훨씬 못 미치지만, 우리는 예술이 적절한 길로 나서기 위해 스스로 애쓰고 있는 방향을 이미 깨달을 수 있다.
The religious consciousness of our time, which consists in recognizing the union of people as both the general and the individual aim of life, has already become sufficiently clear, and the people of our time now have only to reject the false theory of beauty according to which pleasure is recognized as the aim of art, and then religious consciousness will naturally become the guide of art in our time. 우리 시대의 종교적 의식(意識)은, 일반적이며 개인적인 삶의 목적으로서 사람들의 연합을 인정함에 있으며, 이미 충분히 명백해 졌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민중은, 오직 쾌락이 예술의 목적으로 여기는 거짓된 미의 이론을, 거부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종교적 의식은 자연히 우리 시대의 예술의 지침이 될 것이다.
And as soon as religious consciousness, which unconsciously already guides the life of people in our time, is consciously recognized by people, the division of art into art of the lower and art of the upper classes will of itself immediately be annulled. Once there is a common, brotherly art, then of itself there will be rejected, first, that art which conveys feelings discordant with the religious consciousness of our time — feelings which do not unite but disunite people — and, secondly, that worthless, exclusive art which now occupies a significance for which it is unsuited. 그리고 종교적 의식이, 그것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이끌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에 의해 의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하류 계급들의 예술 및 상류 계급들의 예술로의 분할은 즉시 자연히 폐지될 것이다. 일단 공통의 형제애적인 예술이 존재하면, 먼저, 자연히 우리 시대의 종교적 의식과 일치하지 않는 느낌들 — 사람들을 연합하지 않고 불화시키는 느낌들 —  을 전달하는 그런 예술, 둘째로, 지금 어울리지 않는 중요성을 차지하는 가치 없고 배타적인 그런 예술은 거부될 것이다.
And as soon as this happens, art will immediately cease to be what it has been in recent times — a means of brutalizing and corrupting people — and will become what it always has been and should be — a means of mankind’s movement towards unity and well-being. 그리고 이것이 일어나자마자, 예술은 즉시 근래에 있어 왔던 것 —사람들을 비인간적이게 하고 타락시키는 수단을 중단할 것이며 언제나 있어 왔으며 있어야 하는 것 — 화합 및 행복을 향한 인류의 전진의 수단 — 이 될 것이다.
Terrible as it may be to say it, what has happened to the art of our circle and time is the same as happens with a woman who sells her feminine attractions, destined for motherhood, for the pleasure of those who are tempted by such pleasures. 말하기에 두렵지만, 우리 범주 및 시대의 예술에 일어 났던 것은, 모성을 향해야 함에도, 그러한 쾌락들에 유혹 받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여성적 매력들을 파는 여자에게 일어난 것과 동일하다.
The art of our time and circle has become a harlot. And this comparison holds true in the smallest details. It is, in the same way, not limited in time, is always in fancy dress, is always for sale; it is just as alluring and pernicious. 우리 시대 및 범주의 예술은 매춘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최소한의 설명들로도 가능하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시대에 제한 받지 않으며, 언제나 꾸며 입고서, 언제나 팔려고 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유혹적일 뿐만 아니라 해롭다.
The genuine work of art can manifest itself in an artist’s soul only rarely, as a fruit of all his previous life, just as a child is conceived by its mother. Counterfeit art is produced by artisans and craftsmen continually, as long as there are consumers. 진정한 예술 작품은 오직 예술가의 영혼 안에 드물게, 그의 모든 이전의 삶의 열매로서, 마치 한 아이가 어머니에 의해 잉태되듯이 나타날 수 있다. 모조 예술은 소비자가 있는 한 기능공들 및 장인들에 의해 생산된다.
Genuine art has no need for dressing up, like the wife of a loving husband. Counterfeit art, like a prostitute, must always be decked out. 진정한 예술은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처럼 치장이 필요 없다. 모조 예술은, 창녀처럼, 언제나 차려 입혀야만 한다.
The cause of the appearance of genuine art is an inner need to express a stored-up feeling, as love is the cause of sexual conception for a mother. The cause of counterfeit art is mercenary, just as with prostitution. 진정한 예술의 출현의 원인은 축적된 느낌을 표현하려는 내적인 필요이며, 사랑이 어머니를 위한 성적인 잉태의 원인과 같다. 모조 예술의 원인은 금전적이며, 매춘의 경우와 같다.
The consequence of true art is the introduction of a new feeling into everyday life, as the consequence of a wife’s love is the birth of a new person into life. The consequence of counterfeit art is the corruption of man, the insatiability of pleasures, the weakness of man’s spiritual force. 참된 예술의 결과는 일상의 삶으로 새로운 느낌을 도입함이며, 아내의 사랑의 결과가 삶으로의 새로운 사람의 탄생인 것과 같다. 모조 예술의 결과는 사람의 타락, 쾌락에 대한 탐욕이며, 사람의 영적인 힘의 나약함이다.
This is what people of our time and circle must understand in order to get rid of the filthy stream of this depraved, lascivious art that is drowning us. 이것이 바로 우리를 빠져 죽게 하고 있는 이처럼 타락한, 음탕한 예술의 더러운 흐름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 시대 및 범주의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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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