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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by Leo Tolstoy

TRANSLATED BY RICHARD PEVEAR
AND LARISSA VOLOKHONSKY

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XVII

   
Art is one of two organs of mankind’s progress. Through the word, man communicates in thought, through the images of art he communicates in feeling with all people, not only of the present, but of the past and the future. It is proper for mankind to employ both of these organs of communication, and therefore the perversion of either one of them cannot fail to have harmful consequences for the society in which the perversion occurs. And these consequences are necessarily twofold: first, the absence in that society of the activity which should be accomplished by the organ, and, secondly, the harmful activity of the corrupted organ. These very consequences are found in our society. The organ of art has been perverted, and as a result the society of the upper classes has in considerable measure been deprived of the activity which this organ should have accomplished. On the one hand, artistic counterfeits, serving only for people’s amusement and corruption, have spread in our society on an enormous scale, and, on the other hand, works of worthless, exclusive art, valued as the highest art, have perverted the capacity of the majority of people in our society for being infected by true works of art, and have therefore deprived them of the possibility of knowing the highest feelings to which mankind has attained and which can be conveyed to people only by art.  예술은 인류 진보의 두 가지 기관들 중의 하나다. 언어를 통해서 사람은 사상 안에서 통신하고, 예술의 영상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과 느낌 안에서 통신하며, 그것은 현재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과거 및 미래에도 해당된다. 인류가 이들 통신 기관들을 공히 채택하는 것은 적절하며, 그러므로 그것들 중 하나의 왜곡은 틀림 없이 그런 왜곡이 발생하는 사회에 해로운 결과들을 가져 온다. 그리고 이들 결과들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로, 그 기관에 의해 성취되어야 하는 행위가 그 사회에 결여되는 것과 둘째로, 부패한 기관의 해로운 행위 그것들이다. 바로 이런 결과들은 우리 사회에서 발견된다. 예술의 기관은 왜곡되었으며, 그 결과 상류 계급들의 사회는 이 기관이 성취했어야 할 행위를 상당량 박탈당해 왔다. 한편으로, 예술적 모조품들은, 사람들의 쾌락 및 타락을 위해 봉사하면서, 우리 사회 안에 엄청난 규모로 퍼졌으며, 다른 한편으로, 무가치하고 배타적인 예술 작품들은, 최고의 예술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우리 사회 안의 대다수 사람들이 참된 예술 작품들에 전염될 수 있는 능력을 왜곡하였고, 그러므로 그들에게서 인류가 성취한 그리고 오직 예술에 의해서 전달될 수 있는 최고의 느낌들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였다.
All the best that mankind has produced in art remains foreign to people deprived of the capacity for being infected by art, and is replaced by false counterfeits of art or by worthless art which they mistake for genuine. People of our time and society admire the Baudelaires, Verlaines, Moréases, Ibsens, Maeterlincks in poetry; the Monets, Manets, Puvis de Chavannes, Burne-Joneses, Stucks and Bocklins in painting; the Wagners, Liszts, Richard Strausses in music, etc., and are no longer capable of understanding either the highest or the simplest art. 예술에서 인류가 생산해 놓은 모든 훌륭한 것은 예술에 의해 전염될 능력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이질적으로 남아 있고, 예술에 대한 위선적 모조품들에 의해 혹은 진품으로 오인하게 하는 쓸모 없는 예술에 의해 대체된다. 우리 시대 및 사회의 사람들은 시문학에선 보들레르, 베르레느, 모레아스, 입센, 마터링크 파를; 미술에선 모네, 마네, 삐비 드 샤반느, 번 존스, 스튁스 및 보크린스 파를; 음악에선 바그너, 리스트, 리차드 스트라우스 파 등을 찬미한다, 그리고, 더 이상 최고의 혹은 가장 단순한 예술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
Owing to the loss of the capacity for being infected by works of art, people of the upper-class milieu grow up, are educated, and live without the softening, fertilizing effect of art, and therefore they not only do not move towards perfection, do not become better, but on the contrary they become ever more savage, coarse and cruel. 예술 작품들에 의해 전염될 능력의 상실로 인해, 상류 계급 환경의 사람들은 예술의 완화시킴 및 풍부하게 하는 효과를 결여된 채 성장하고 교육받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성으로 나아가지도 않고, 개선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들은 더욱 더 야만적이며, 거칠고 잔인해져 간다.
Such is the consequence of the absence of the activity of the necessary organ of art in our society. Yet the consequences of the perverted activity of that organ are still more harmful, and they are many. 이러한 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필요한 기관에 의한 활동의 결여의 결과이다. 하지만 그런 기관의 왜곡된 활동의 결과들은 훨씬 더 해로우며, 그것들은 많이 존재한다.
The first consequence that strikes the eye is the enormous waste of working people’s labour on something not only useless, but for the most part harmful, and, furthermore, the irredeemable waste of human lives on this needless and bad thing. It is terrible to think with what effort, with what privations, millions of people work, having no time or possibility to do necessary things for themselves and their families, spending ten, twelve or fourteen hours a night typesetting pseudo-artistic books that spread depravity among people, or working for theatres, concerts, exhibitions, galleries, which mostly serve the same depravity; but most terrible is to think that lively, nice children, capable of all good, devote themselves from an early age to spending six, eight or ten hours a day for ten or fifteen years playing scales, or twisting their limbs, walking on their toes and raising their legs above their heads, or singing solfeggios, or declaiming verses with various affectations, or drawing busts, naked models, painting sketches, or writing compositions by the rules of certain periods; and that in these occupations, unworthy of human dignity, continuing often long after full maturity, they lose all physical and intellectual power and all understanding of life. People say it is terrible and pitiful to look at little acrobats putting their legs behind their necks, but it is no less pitiful to look at ten-year-old children giving concerts, and still more so to see ten-year-old children who know by heart the exceptions of Latin grammar . . . But it is not only that these people are crippled physically and mentally — they are also crippled morally, becoming incapable of anything that is really necessary for people. Occupying in society the role of entertainers of the wealthy, they lose their sense of human dignity, they develop in themselves such a passion for public praise that they suffer permanently from unsatisfied vanity, inflated to a morbid degree in them, and they use all the powers of their soul to satisfy just this passion. And most tragic of all is that these people, destroyed in order to live for art, not only are in no way useful to this art, but cause it the greatest harm. In the academies, schools, conservatories, they are taught how to counterfeit art, and, while being taught this, they become so perverted that they lose all ability to produce genuine art and become purveyors of that counterfeit or worthless or depraved art that fills our world. This is the first consequence of the perversion of the organ of art to strike the eye. 눈에 확 들어오는 첫 번째 결과는 쓸모 없을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해로운 것에 대한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엄청난 소모이며, 나아가서, 이 같이 필요 없고 악한 것에 대한사람의 목숨들의 구제할 수 없는 소모이다. 어떠한 노력, 어떠한 궁핍들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무서운 일로서, 그들은 자신들 및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행할 아무런 시간 혹은 가능성도 갖지 못하며, 사람들 사이에 타락을 퍼트리는 유사 예술 서적들을  조판하느라 하룻밤에 열, 열두 혹은 열네 시간을 소모하거나, 혹은 대체적으로 동일한 타락을 조장하는 극장들, 연주회들, 전시회들, 화랑들을 위해 노동한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명랑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모든 선할 수 있음에도, 어린 시절부터 십 년 혹은 십오 년, 동안 하루에 여섯, 여덟 혹은 열 시간이나 악보를 연주하거나, 혹은 팔다리를 비틀면서, 발끝으로 걷고 다리를 머리 위로 올리거나, 혹은 솔페지오를 부르거나, 혹은 다양한 꾸밈으로 시구들을 읊어 대거나, 혹은 반신상들, 벌거벗은 모델들을 그리고, 스케치들을 그리거나, 혹은 특정한 악절의 규칙들에 의한 작곡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직업들에서, 인간의 존엄이라곤 없이, 종종 완전히 성숙되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들은 모든 신체적 지적 능력 및 삶에 대한 모든 이해를 상실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꼬마 곡예사들이 다리를 목 뒤로 올리는 것이 무서우며 가련하지만, 열 살짜리 아이들이 연주회를 갖는 것은 덜 가련하고 열 살짜리 아이들이 라틴어 문법의 예외들을 암기하는 것을 보는 것은 훨씬 덜 가련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만 불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게 됨으로써, 그들은 또한 도덕적으로도 불구이다. 사회 안에서 부유한 사람들의 접대자의 역할을 차지함으로써, 그들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고, 그들은 자신들 안에 대중의 찬사를 위한 그 같은 정열을 발전시킴으로써 만족시킬 수 없는 허영으로부터 영구히 고통 받으며, 병적인 상태로 부풀려져서, 그들은 단지 이런 정열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 모든 정신력을 이용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것은 이 사람들이, 예술을 위해 살고자 파괴되었으면서도, 이런 예술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술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학원들, 학교들, 예술학교들에서, 그들은 예술을 모조하는 것을 배우고, 이것을 배우는 한편, 그들은 너무나 왜곡되어서 참된 예술을 만들어 낼 모든 능력을 상실하며 우리 세상을 채우는 그러한 모조의 혹은 가치 없는 혹은 타락한 예술의 조달자가 된다. 이것이 눈에 두드러지는, 예술의 기관에 대한 왜곡의 첫 번째 결과이다.
The second consequence is that the works of art-amusement, produced in such frightful quantities by the army of professional artists, enable the wealthy people of our time to live a life that is not only unnatural but contrary to the principle of humaneness professed by these same people. To live as wealthy, idle people live, the women especially, away from nature and from animals, in artificial conditions, with muscles atrophied or abnormally developed by gymnastics, and with a weakened vital energy, would be impossible were it not for what is called art, were it not for the diversion, the amusement which turns these people’s eyes from the meaninglessness of their lives and saves them from the boredom that oppresses them. Take from all these people the theatres, concerts, exhibitions, piano playing, ballads, novels with which they occupy themselves in the conviction that this is a very refined, aesthetic and therefore good occupation, take from the Maecenases of art, who buy paintings, patronize musicians, keep company with writers, their role as patrons of the important matter of art, and they will be unable to go on with life, they will all die of boredom, tedium, the awareness of the meaninglessness and lawlessness of their life. Only the occupa­tion with what is considered art among them enables them, in violation of all natural conditions of life, to go on living without noticing the meaninglessness and cruelty of their life. And this supporting of the false life of the wealthy is the second and not insignificant consequence of the perversion of art. 두 번째 결과는 오락 예술 작품들이, 수많은 직업 예술가들에 의해 그토록 놀라운 양으로 제작되어서, 우리 시대의 부유한 사람들이 자연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들 동일한 사람들이 공언하는 인간미의 원리에 반하는 삶을 살아 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부유하고, 나태한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이, 자연과 동물들로부터 떨어져서, 인공적인 조건들에서, 퇴화되거나 체조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근육, 그리고 약화된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살 듯이 산다는 것은 소위 예술이 없다면, 이 사람들의 시선들을 그들의 삶의 무의미함으로부터 돌리고 그들을 압박하는 권태로부터 구원해 주는 유희, 오락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세련되고 미학적이며 그러므로 훌륭한 직업이라는 확신에서 그들이 몰두하고 있는, 극장들, 연주회들, 전시회들, 피아노 연주들, 시들, 소설들을  제거한다면, 그림들을 사주고, 음악가들을 후원하며, 작가들과 친구를 해주는 마이케나스들에게서, 그들의 예술에 관한 중요한 문제의 후원자들 역할을 빼앗아 버린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의 삶의 지루함과 단조로움, 무의미함에 대한 깨달음 및 무질서함으로 그들 모두가 죽을 것이다. 오직 그들 사이에서 예술로 여겨지는 것에 몰두함 만이, 모든 자연적 상태들을 파괴하고서라도, 그들로 하여금 삶의 무의미함 및 잔인함을 알아차림 없이 살아 나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처럼 부유한 자들의 이런 위선적 삶을 지지하는 것은 예술의 왜곡의 두 번째이자 사소하지 않은 결과이다. 
The third consequence of the perversion of art is the confusion it produces in the notions of children and the people. Those who are not perverted by the false theories of our society — working people, children — have a very definite idea of what one can be honoured and praised for. According to the understanding of simple people and children, the grounds for praising and glorifying people can only be either physical strength (Hercules, mighty men, conquerors) or moral, spiritual strength (Shakyamuni abandoning his beautiful wife and his kingdom in order to save men, or Christ going to the cross for the truth he professed, and all martyrs and saints). Both are comprehensible to simple people and children. They understand that one cannot but respect physical strength, because it makes itself respected; as for the moral strength of the good, an unspoiled man cannot but respect it, because he is drawn to it by his entire spiritual being. And then these children and simple people suddenly see that besides those who are praised, honoured and rewarded for their physical or moral strength, there are also some who are praised, glorified, rewarded on an even greater scale than the heroes of strength and goodness merely because they sing well, write poetry, are good dancers. They see that singers, writers, painters, dancers make millions, that they are given greater honours than saints, and these simple people and children become perplexed. 예술 왜곡의 세 번째 결과는 아이들 및 민중들의 인식들에 그것이 만들어 내는 혼란이다. 우리 사회의 위선적 이론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사람들 — 노동자들, 어린이들 — 은 무엇에 대해 명예를 얻고 찬사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확고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 단순한 사람들 및 아이들의 이해에 따르면, 사람들을 칭찬하고 명예롭게 하는 이유들은 오직 육체적 힘 (헤라클레스, 권력자들, 정복자들) 혹은 도덕적, 영적인 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름다운 아내와 그의 왕국을 포기하는 석가모니, 혹은 그가 고백한 진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그리고 모든 순교자들 및 성자들)이다. 둘은 단순한 사람들 및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신체적 힘을 존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는 존경 받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덕적 힘에 대해선,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존경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전적인 영적인 존재로서 그것에 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아이들 및 단순한 사람들은 갑자기 신체의 혹은 도덕적인 힘으로 칭찬받고, 명예를 얻고 보상을 받는 사람들 외에 또한,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고, 시를 잘 쓰며, 뛰어난 무용수라서, 힘 및 선행의 주인공들 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찬사를 받고, 명예를 얻으며, 보상을 받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가수들, 작가들, 화가들, 무용수들이 수백만을 번다는 것, 그들이 성자들보다 더욱 큰 명예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 단순한 사람들 및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When, fifty years after Pushkin’s death, cheap editions of his works were published and spread among the people, and a monument was erected to him at the same time in Moscow, I received more than ten letters from different peasants asking why Pushkin was so glorified. Just the other day I was visited by a literate tradesman from Saratov who had apparently lost his mind over this question and was going to Moscow to expose the clergy for having contributed to the erecting of the ‘monamint’ to Mr Pushkin. 푸쉬킨의 사후 오십 년 뒤에, 그의 값싼 작품집들이 민중들 사이에 출판되어 퍼지고, 동시에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모스크바에 세워졌을 때, 나는 다른 농부들로부터 열 통 이상의 편지를 받았는데, 왜 푸쉬킨이 그토록 명예를 받는가 묻는 것이었다. 바로 그 다음날 사라토프로부터, 명백히 이 의문에 대해 생각을 빼앗기고 푸쉬킨 씨를 위한 '기념비' 건립에 기증하였음을 성직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고 있는, 한 상인의 방문을 받았다.
In fact, one need only imagine the situation of such a man of the people when he learns, from the newspapers and rumours that reach him, that the clergy, the authorities, all the best people of Russia have triumphantly unveiled a memorial to the great man, the benefactor, the glory of Russia — Pushkin, of whom he has hitherto heard nothing. He reads or hears about it from all sides and thinks that if such honours are rendered a man, the man probably did something extraordinary, either of strength or of goodness. He tries to find out who Pushkin was, and, having found out that Pushkin was not a mighty man or a military leader, but was a private person and a writer, he concludes that Pushkin must have been a holy man and teacher of the good, and he hastens to read or hear about his life and writings. But how great must be his perplexity when he learns that Pushkin was a man of worse than light morals, that he died in a duel — that is, while attempting to murder another man — and that his entire merit consists merely in having written poems about love, often quite indecent ones. 사실, 오로지 이러한 민중의 한 사람의 상황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도달하는 신문들 및 소문들로부터, 성직자, 당국들, 러시아의 모든 훌륭한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 러시아의 은인, 영광 — 푸쉬킨 — 을 위한 기념비를 의기양양하게 공개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는 푸쉬킨에 대해 여태까지 아무것도 들은 적이 없다. 그는 그것에 대해 도처로부터 읽거나 들어보며 생각한다, 만일 그러한 영예가 그에게 주어진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힘이랄까 선행이랄까,범상치 않은 어떤 것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푸쉬킨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애써서 알아본다, 그리고 푸쉬킨이 권력자도 군대의 지도자도 아니라, 한 개인이며 작가임을 알아 내고서, 푸쉬킨이 성자이며 선을 가르치는 교사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그의 생애와 작품들에 대해 서둘러 읽어 보거나  들어본다. 그러나 그의 당혹감은 얼마나 크겠는가 푸쉬킨이 매우 경박한 품행의 사람이었고, 결투 중 —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살해하려 시도하던 중 — 에 죽었으며, 그의 전체 공로는 단지 사랑에 관한 시들을, 종종 매우 저속한 것들을 썼음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That some mighty man, as Alexander of Macedon, Genghis Khan or Napoleon, were great he can understand, because any one of them could crush him and thousands like him; he also can understand that Buddha, Socrates and Christ are great, because he knows and feels that he and all people ought to be like them; but why a person should be great because he wrote poems about the love of women — that he cannot understand. 일부 권력자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징기스칸 혹은 나폴레옹은 위대하다는 것을 그는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 중 어떤 한 사람이라도 그 및 그와 같은 수천 명을 분쇄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부처, 소크라테스 및 그리스도가 위대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며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한 사람이 여성에 대한 사랑의 시들을 썼다고 해서 위대하다는지 —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The same must go on in the head of a Brecon or Norman peasant who learns of the setting up of a memorial, une statue, as if to the Mother of God, to Baudelaire, when he reads or is told of the contents of Les Fleurs du Mal, or — still more amazing — to Verlaine, when he learns of the pathetic, depraved life the man led, and reads his poetry. And what confusion must occur in the heads of simple people when they learn that some Patti or Taglioni [110] is paid 100,000 per season, that a painter gets as much for a picture, and that the authors of novels describing love scenes get even more. 똑같은 생각이 브레송 혹은 노만 농부의 머리에서도 틀림없이 일어 난다. 그는, 마치 성모를 향한 것처럼, 보들레르를 위한 기념비 건립을 알게 되고서, Les Fleurs du Mal을 읽거나 들어보게 될 때, 혹은 — 더욱 놀라운 것은 — 베르렌느를 위한 것일 때, 그는 그가 살아온 병적이며, 타락한 인생을 알게 되며, 그의 시를 읽어 본다. 그리고 단순한 사람들이 일부 빠티와 같은 오페라 가수 혹은 따글리오니 같은 무용수가 계절마다 십억씩 받으며, 어떤 화가도 한 그림에 대해 그렇게 받는다는 것, 그리고 사랑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소설들의 작가들은 심지어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의 머리에는 어떤 혼란이 일어나겠는가.
The same also happens with children. I remember experiencing this astonishment and perplexity myself, and becoming reconciled with this extolling of artists on a par with mighty men and moral heroes only by lowering in my consciousness the significance of moral worth and accepting the false, unnatural significance of works of art. The same thing happens in the soul of every child or simple person when he learns of the strange honours and rewards rendered to artists. This is the third consequence of our society’s false attitude towards art. 똑같은 일이 또한 아이들에게 일어난다. 나는 나 자신도 이 같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경험한 것을 기억하며, 이처럼 예술가들을 권력자 및 도덕적 영웅들과 동급으로 찬양함에 대해, 나의 의식에서 도덕적 가치의 의미를 낮춤으로써 그리고 예술 작품들의 위선적이며, 가당치 않은 의미를 수용함으로써, 감내하게 되었다. 동일한 것이 모든 어린이 혹은 단순한 사람의 영혼에서도, 예술가들에게 이상한 명예 및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일어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예술에 대한 위선적 경향의 세 번째 결과이다.
The fourth consequence of such an attitude is that people of the upper classes, as they encounter more and more frequently the contradiction between beauty and the good, place the ideal of beauty higher, thereby freeing themselves from the demands of morality. These people, instead of recognizing the art they serve for what it is — that is, as a backward thing — pervert the roles and recognize morality as a backward thing which can have no importance for people of a high degree of development, such as they fancy themselves to be. 그러한 경향의 네 번째 결과는 상류 계급들의 사람들이, 미와 선 사이의 모순을 점점 더 자주 마주침에 따라, 미의 이상을 더 높이 두고, 그리하여 도덕성의 요구들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봉사하는 예술을 있는 그대로 인식함 대신에  — 즉, 후진적인 것으로서 — 역할들을 왜곡하며, 그들 자신이 그렇다고 여기는 것처럼, 도덕성을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룬 사람들에게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하는 후진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This consequence of the wrong attitude towards art has long been manifest in our society, but lately, with its prophet Nietzsche and his followers, as well as the decadents and English aesthetes identical with them, it has been expressing itself with particular insolence. Decadents and aesthetes like Oscar Wilde choose as the theme of their works the denial of morality and the praise of depravity. 예술에 대한 잘못된 경향의 이 같은 결과는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드러나 있었으나, 최근, 그 선지자인 니체와 그의 추종자들, 뿐만 아니라 데카당파들 및 그들과 동일한 영국 미학자들과 더불어, 특별한 오만함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었다. 데카당파들 및 오스카 와일드와 같은 미학자들은 그들 작품들의 주제로서 도덕성의 거부 및 타락의 찬미로 삼고 있다.
This art has partly produced and partly coincided with a similar philosophical teaching. I recently received from America a book entitled The Survival of the Fittest: Philosophy of Power, by Ragnar Redbeard (Chicago, 1896). The essence of this book, as expressed in the publisher’s preface, is that to evaluate the good by the false philosophy of Hebrew prophets and weeping messiahs is madness. Right results not from any teaching, but from power. All laws, commandments and teachings about not doing to others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inherently mean nothing, and acquire meaning only from cudgel, prison and sword. A truly free person is not obliged to obey any injunctions, human or divine. Obedience is the sign of degeneracy; disobedience is the sign of the hero. People should not be bound by traditions invented by their enemies. The whole world is a slippery battlefield. Ideal justice consists in the vanquished being exploited, tormented, despised. The free and brave can conquer the whole world. And therefore there should be eternal war for life, for land, for love, for women, for power, for gold. (Something similar was voiced several years ago by the famous and refined academician Vogüé. [111]) The earth with its treasures is the ‘booty of the bold’.. 이런 예술은 한 가지 유사한 철학적 가르침을 일부 만들어 내었거나 일부 그와 일치하였다. 나는 미국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았는데, 제목은 The Survival of the Fittest: Philosophy of Power, by Ragnar Redbeard (Chicago, 1896)이다. 이 책의 핵심은, 발행자 서문에 표현하였듯이, 히브리 선지자들 및 흐느끼는 메시아의 위선적 철학으로 선을 평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의로움은 어떤 가르침으로부터가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나온다. 당신에게 행해지기를 당신이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모든 율법들, 계명들 및 가르침들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리고 오직 곤봉, 감옥 및 칼 만이 의미를 갖는다. 진실로 자유인 사람은 인간의 것이든 신의 것이든 어떤 명령들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 복종은 타락의 증표이다; 불복종은 영웅의 증표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원수들이 창안해 놓은 전통들에 구속되어선 안 된다. 전체 세상은 미끄러운 전쟁터이다. 이상적 정의는 정복된 자가 착취되고, 고통 받고, 경멸됨에 있다. 자유로운 자 및 용감함 자들이 전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위해, 땅을 위해, 사랑을 위해, 여자들을 위해, 권력을 위해, 황금을 위해 영원한 전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유명하고 세련된 학술원 회원인 보그에 의해, 유사한 어떤 것이 언급되었다). 지상의 재물들은 '용기 있는 자의 자의 전리품'이다.
The author, obviously on his own, independently of Nietzsche, has come to the same conclusions as are professed by modern artists. 그 작가는, 명백히 자기 스스로, 니체와는 별도로, 현대 예술가들이 공언한 것과 동일한 결론들에 이르렀다.
Expounded in the form of a teaching, these principles strike us. In fact, these principles are contained in the ideal of art that serves beauty. The art of our upper classes has cultivated in people this ideal of the superman — which in fact is the old ideal of Nero, Stenka Razin, Genghis Khan, Robert Macaire, Napoleon, [112] and all their accomplices, satellites and flatterers — and maintains it in them with all its might. 가르침의 형식으로 설명됨으로써, 이들 원리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실상, 이들 원리들은 미를 떠 받드는 예술의 이상에 담겨진다. 우리 시대의 상류 계급들의 예술은 사람들 안에 이 같은 초인 — 실상 네로, 스텡카 라진, 징기스칸, 로버트 마케르, 나폴레온의 퀘퀘묶은 이상, 그리고 그들의 모든 한통속, 추종자들 및 아첨꾼들 —의 이상을 배양하였으며 모든 힘을 다해 그들 안에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This supplanting of the ideal of morality by the ideal of the beautiful — that is, of pleasure — is the fourth consequence, and a terrible one, of the perversion of art in our society. It is frightening to think of what would happen to mankind if such art were to spread among the popular masses. And it is already beginning to do so. 이 같이 미의 — 즉, 쾌락의 — 이상으로 도덕성의 이상을 대체함은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왜곡의, 네 번째의 결과이며, 무시무시한 것이다. 만일 그런 예술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인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보니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The fifth thing, finally, and the chiefest, is that the art which flourishes in the milieu of the upper classes of European society directly corrupts people by infecting them with the worst and humanly most harmful feelings of the superstition of patriotism and, chiefly, of sensuality. 다섯 번째 것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 상류 사회의 환경에서 번창하는 예술은, 가장 악하며 인간적으로 가장 해로운, 애국심의 그리고 주로 음란성의 미신에 대한 느낌들을, 그들에게 감염시킴으로써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Look attentively at the causes of ignorance in the popular masses and you will see that its chief cause is by no means the lack of schools and libraries, as we are accustomed to think, but the superstitions, churchly as well as patriotic, with which they are imbued and which are constantly being generated by all the re­sources of art. For church superstitions — by the poetry of prayers, hymns, the painting of icons, the sculpting of statues, by singing, organs, music, and architecture, and even by dramatic art in church services. For patriotic superstitions — by verses, by stories told even in schools; by music, singing, solemn processions, royal entrances, military paintings, and memorials. 일반 민중들 안에서 무지의 원인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그 주된 원인이, 우리가 즐겨 생각하듯, 결코 학교들 및 도서관들의 부족이 아니라, 교회적인 뿐만 아니라 애국적인 미신들이며, 그들은 그것들에 흠뻑 젖어 있으며 그것들은 모든 예술 자원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교회 미신들은 — 기도의 시들, 찬양들, 성상 미술, 조상의 조각에 의한 것, 가창, 오르간, 음악, 그리고 건축에 의한 것, 그리고 심지어 교회 예배들에서 극 예술에 의한 것. 애국적인 미신들은 — 운문들에 의한 것, 심지어 학교들에서 배우는 이야기들에 의한 것; 음악, 가창, 엄숙한 행진들, 왕족의 입장들, 군대 미술들, 및 기념비들에 의한 것이 있다.
If it were not for the constant activity of all branches of art in maintaining churchly and patriotic stupefaction and embitterment among the people, the popular masses would long ago have attained to true enlightenment. But it is not only churchly and patriotic corruption that art accomplishes. 민중들 사이에서 교회적인 및 애국적인 마비 상태 및 악한 마음을 유지함에 있어서 예술의 모든 분야들의 끊임없는 활동이 없었더라면, 일반 민중들은 오래 전에 진정한 계몽을 달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성취하는 것은 교회적인 및 애국적인 타락만이 아니다.
In our time art also serves as the main cause of people’s corruption in the most important question of social life — Sexual relations. We all know from our own selves, and fathers and mothers also know from their children, what terrible spiritual and bodily sufferings, what a useless waste of energy people experience only because of the licentiousness of sexual lust. 우리 시대에 예술은 또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삶 — 성 관계들 — 의 문제 안에서 사람들의 타락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들로부터 알고 있고, 그리고 아버지들 및 어머니들은 그들의 자식들로부터 알고 있듯이, 오직 성적 탐욕과 같은 방탕함 때문에, 얼마나 무서운 영적 및 육체적 고통들을, 얼마나 쓸모 없는 힘의 낭비를 사람들이 겪고 있는지 안다.
Since the world began, since the time of the Trojan War, which was started because of sexual licentiousness, and down to the suicides and murders on account of love reported in almost every day’s newspaper, a great share of mankind’s suffering has been caused by this licentiousness. 세상이 시작된 이후, 성적인 방탕함 때문에 시작된, 트로인 전쟁 이래로, 그리고 거의 나날의 신문에 보도되는 사랑이라는 이유에 의한 작금의 자살들 및 살인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인류의 고통들은 이와 같은 방탕함이 원인이 되었다.
And what then? All art, both genuine and counterfeit, with the rarest exceptions, is devoted solely to describing, portraying, arousing all sorts of sexual love, in all its forms. One has only to recall all the novels with lust-inciting descriptions of love, most refined ones and most crude ones, with which the literature of our society is filled; all those paintings and statues portraying the naked female body and all sorts of nastiness that passes into illustrations and advertisements; only to recall all the vile operas, operettas, songs, ballads with which our world teems — and one involuntarily thinks that existing art has only one definite aim: the widest possible spreading of depravity. 그리고 다음은 무엇인가? 모든 예술, 참이든 모조이든, 거의 예외 없이, 모든 형식에서, 오로지 모든 종류의 성적인 사랑을 묘사하고, 그리고, 야기함에 바쳐진다. 우리는 오직 모든 소설들이, 가장 세련된 것들과 가장 투박한 것들로, 성욕을 돋구는 사량의 묘사라고,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학은 그런 내용으로 채워진다고; 모든 그 같은 미술품들 및 형상들은  벌거벗은 여체 및 삽화들 및 광고들로 변하는 모든 종류의 추잡한 것들을 묘사한다고 상기하면 된다; 모든 혐오스런 오페라들, 오페레타들, 가곡들, 가요들로 우리 세상이 벅적거린다고 상기하기만 하면 된다 — 그리고 무의식 중에 생각한다. 기존 예술은 오직 한 가지 확실한 목적을 가진다: 가능한 널리 타락을 퍼트리는 것.
Such are, if not all, at least the most certain consequences of the perversion of art that has taken place in our society. And thus what is called art in our society not only does not contribute to mankind’s movement forward, but perhaps more than anything else it hinders the realization of the good in our life. 이러한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예술의 왜곡의, 적어도 가장 확실한 결과들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은 인류의 진보에 기여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마 그 무엇보다도 우리 삶에서 선의 실현을 저해한다.
And therefore the question involuntarily asked by any man who is free from artistic activity and therefore not bound to existing art by any self-interest — the question I put at the beginning of this writing — whether it is just that such sacrifices be offered to what we call art, which belongs to only a small part of society, sacrifices in human labour and in human lives — receives its natural answer: no, it is not just and it should not be so. This is the answer of common sense and of unperverted moral instinct. Not only should it not be so, not only should no sacrifices be offered to that which is recognized as art among us, but, on the contrary, all the efforts of people who wish to live a good life should be directed towards destroying this art, because it is one of the cruellest evils oppressing our mankind. So that if the question were put as to which would be better for our Christian world, to lose all that is now regarded as art, including all that is good in it, together with false art, or to continue to encourage or allow the art that exists now, I think that any reasonable and moral person would again decide the question the way it was decided by Plato for his republic and by all Church Christian and Muhammadan teachers of mankind — that is, he would say: ‘Better that there be no art than that the depraved art, or simulacrum of it, which exists now should continue.’ Fortunately, no one is faced with this question, and no one has to decide it one way or the other. All that man can do, all that we so-called educated people, who are in a position to be abl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phenomena of our life, can and must do is understand the delusion we are in, and not persist in it, but seek to get out of it.

 

그리고 그러므로 예술적 활동에서 자유로운 그리고 그러므로 어떤 이기주의에 의해서 기존 예술에 매여 있지 않은 어떤 사람에 의해 저도 모르게 제기되는 질문 — 내가 이 책의 서두에서 제기한 질문 —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오로지 사회의 작은 일부에게 속하는 것에 그러한 희생들이, 인간의 노동에서 그리고 인간의 삶들에서 희생들이 바쳐져야 하는가 — 이 그 당연한 답을 얻게 된다: 아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상식의 그리고 왜곡되지 않은 도덕적 본능의 대답이다. 그렇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예술로 인식되는 것들에 어떤 희생들도 바쳐져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선한 삶을 살고자 희망하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들이 이런 예술을 파괴함으로 향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인류를 억압하는 가장 잔인한 악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세상을 위해 어느 것이 나은가, 즉, 위선적인 예술과 함께, 그 안에 있는 선한 모든 것을 포함하여, 지금 예술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존재하는 예술을 계속해서 장려하거나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면, 나는 어떤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공화국의 플라톤에 의해서 그리고 모든 교회의 그리스도교 및 모하메드교의 인류의 교사들에 의해 결정된 방식대로 다시금 문제를 결정할 것이다 — 즉, 그는 말할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타락한 예술,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 계속되는 것보다 예술이 없는 편이 낫다.' 다행스럽게, 아무도 이런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이쪽 혹은 저쪽으로 결정해야 하지 않는다. 사람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것, 소위 우리 교육받은 사람들, 우리 삶의 현상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행할 수 있고 반드시 행해야 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망상을 깨닫고, 그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헤쳐 나오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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