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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by Leo Tolstoy

TRANSLATED BY RICHARD PEVEAR
AND LARISSA VOLOKHONSKY

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IX

   
The unbelief of the upper classes of the European world created a situation in which the activity of art, the aim of which was to convey the loftiest feelings mankind has attained to in its religious consciousness, was replaced by an activity the aim of which was to afford the greatest pleasure to a certain group of people. And from the whole vast area of art, that alone which affords pleasure to people of a certain circle has been singled out and has come to be called art. 유럽 세계의 상류 계급들의 불신앙은 예술 활동이, 그 목적이 그 종교적 의식에서 인류가 도달한 가장 숭고한 느낌들을 전달하는 것임에도, 특정 무리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쾌락을 제공하는 목적을 지닌 활동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전체 광대한 예술의 영역에서, 오직 특정 범주의 사람들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것이 선별되어 예술로 불러지게 되었다.
Not to mention the moral consequences for European society of this singling out from the whole area of art and bestowing importance upon an art not deserving of such evaluation, this perversion of art weakened art itself and drove it almost to ruin. The first consequence was that art lost the infinitely diverse and profound religious content proper to it. The second consequence was that, having only a small circle of people in mind, it lost beauty of form, became fanciful and unclear; and the third and chief consequence was that it ceased to be sincere and became artificial and cerebral. 유럽 사회가 이처럼 전체 예술의 영역에서 가려내고 그 같은 평가의 가치가 없는 어떤 예술에 중요성을 부여함에 대한 도덕적 결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술에 대한 이런 왜곡은 예술 자체를 약화시켰고 그것을 거의 파괴로 몰아갔다. 첫 번째 결과는 예술이 그에 고유한 무한히 다양하며 심오한 종교적 내용을 잃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결과는, 오직 적은 부류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형태의 아름다움을 잃고서, 비현실적이며 난해하게 되었다;그리고 세 번째이자 주된 결과는 그것이 진지하기를 멈추었고 인위적이며 지성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The first consequence — impoverishment of content — occurred because the only true work of art is one that conveys a new feeling not experienced by people before. As a product of thinking is only a product of thinking when it conveys new observations and thoughts, and does not repeat what is already known, in exactly the same way a work of art is only a work of art when it introduces a new feeling (however insignificant) into the general usage of human life. The only reason why children and adolescents experience works of art so strongly is that they convey to them for the first time feelings that they have not experienced before. 첫 번째 결과 — 내용의 저질화 — 은 유일한 예술 작품은 사람들에 의해 이전에 경험되지 않았던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생했다. 사유의 결과는 그것이 오직 새로운 발견들 및 사상들을 전달할 때 오로지 사유의 산물이며, 이미 알려진 것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듯이,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예술 작품은 그것이 새로운 느낌을 인간의 삶에 보편적 이용으로 도입할 때에 비로소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예술 작품들을 강렬하게 경험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느낌들을 그것들이 처음으로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A completely new feeling, never before expressed by anyone, has a similarly strong effect upon adults. The art of the upper classes, evaluating feelings not according to religious consciousness, but by the degree of pleasure they afford, deprived itself of the source of these feelings. There is nothing older or more hackneyed than pleasure; and there is nothing newer than the feelings that emerge from the religious consciousness of a particular time. And it could not be otherwise: a limit is set to man’s pleasure by nature; but mankind’s movement forward — which is expressed by religious consciousness — has no limits. With each step forward that mankind takes, and these steps are made through an ever-increasing clarification of religious consciousness — people experience more and more new feelings. And therefore it is only on the basis of religious consciousness, which reveals the highest degree of understanding of life attained by the people of a certain period, that there can emerge new feelings never before experienced by men. From ancient Greek religious consciousness there came truly new and infinitely diverse feelings, important for the Greeks, expressed by Homer and the tragedians. It was the same for the Jews, who attained to the religious consciousness of monotheism. This consciousness also produced all the new and important feelings expressed by the prophets. 완전히 새로움 느낌은, 이전에 누구에 의해서도 표현되지 않았으므로, 성인들에게도 비슷하게 강렬한 영향을 미친다. 상류 계급들의 예술은, 느낌들을 종교적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제공하는 쾌락의 정도에 의해서 평가함으로써, 스스로 이런 느낌들의 원천을 막아 버렸다. 쾌락보다 더 오래된 것이나 더 진부한 것은 없다; 그리고 특정한 시대의 종교적 의식에서 솟아 나오는 느낌들 보다 더 새로운 것은 없다. 그리고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쾌락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인류의 진보를 향한 — 종교적 의식에 의해 표현되는 — 움직임은 한계가 없다. 인류가 취하는 진보를 향한 제각기 발걸음으로, 그리고 이들 걸음들은 끊임 없이 증가하는 종교적 의식의 정화를 통해 이루어 진다  — 사람들은 점점 더 새로운 느낌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러므로 특정 시기의 민중에 의해 달성되는 최고도의 삶의 이해를 드러내는 오직 종교적 의식의 토대 위에서야 비로서, 사람들에 이해 이전에 결코 경험되지 못한 새로운 느낌들이 나타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하며, 호머와 비극 작가들에 의해 표현되었던, 참으로 새롭고 무한히 다양한 느낌들이 왔다. 일신교라는 종교적 의식에 도달하였던 유태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런 의식 또한 선지자들에 의해 표현된 모든 새롭고 중요한 느낌들이었다.
It was the same for medieval man, who believed in the Church community and the heavenly hierarchy; and it is the same for the man of our time who has adopted the religious consciousness of true Christianity — the consciousness of the brotherhood of men. 교회 공동체와 천사 계급을 신봉한 중세 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참 그리스도교에 대한 종교적 인식  — 인류에 대한 형제애의 인식  — 을 채택한 우리 시대의 사람에게 마찬가지다.
The diversity of feelings produced by religious consciousness is infinite, and they are all new, because religious consciousness is nothing other than the indication of the new, creative attitude of man towards the world, while the feelings arising from the desire for pleasure are not only limited, but have long since been experienced and expressed. And therefore the unbelief of the European upper classes led them to an art most poor in content. 종교적 의식에 의해 만들어 지는 느낌들의 다양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새롭다, 왜냐하면 종교적 의식은 바로 세상을 향한 사람의 새롭고 창의적인 태도의 표시이다, 반면, 쾌락을 위한 욕망으로부터 일어나는 느낌들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경험되고 표현되어 왔다. 그리고 그러므로 유럽 상류 사회들의 불신앙은 그들을 내용에 있어서 가장 빈약한 예술에 이르게 했다.
The impoverishment of the content of upper-class art was increased by the fact that, having ceased to be religious, it also ceased to be popular, thereby diminishing still further the range of feelings it conveyed, since the range of feelings experienced by the ruling, wealthy men, who do not know the labor that maintains life, is much smaller, poorer and more insignificant than the range of feelings of working people. 상류 계급 예술의 내용의 저질화는, 종교적이기를 중단되고 나서, 대중적이기를 멈추고, 그럼으로써 그것이 전달하던 훨씬 더 넓은 범위의 느낌들을 감쇄시켰다는 사실에 의해 증가되고 있다, 왜냐하면 삶을 지탱해 주는 노동을 모르는 지배계층 및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 경험되는 느낌들의 범위가, 노동하는 사람들의 느낌들의 범위보다 훨씬 작고, 빈약하고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People of our circle, aestheticians, usually think and say the opposite. I remember the writer Goncharov, an intelligent, educated man, though a thorough city-dweller and an aesthetician, telling me that after the Hunter’s Notes of Turgenev there was nothing left to write about the life of the people. It was all used up. The life of laboring people seemed so simple to him that after Turgenev’s stories of the people there was nothing left to describe. But the life of the wealthy people, with its love affairs and self-dissatisfactions, seemed to him full of infinite content. One hero kissed his lady’s palm, another her elbow, a third in some other way. One languishes from laziness, another because he is unloved. And it seemed to him there was no end of diversity in this area. And this opinion, that the life of laboring people is poor in content, while our life, the life of idle people, is full of interesting things, is shared by a great many people of our circle. The life of the laboring man, with its infinitely diverse forms of labor and the dangers connected with it on the sea or under the ground, with his travels, dealings with proprietors, superiors, comrades, with people of other confessions and nationalities, his struggle with nature, wild animals, his relations with domestic animals, his labors in the forest, the steppe, the fields, the orchard, the kitchen garden, his relations with his wife and children, not only as close and dear people but as co-workers, helpers, replacements in his work, his relation to all economic questions, not as subjects of discussion or vanity, but as questions vital for himself and his family, with his pride in self-sufficiency and service to others, with his pleasure in time off, and all these interests pervaded by a religious attitude towards these phenomena — to us, who have no such interests and no religious understanding, this life seems monotonous compared with the small pleasures and insignificant cares of our life, not of labor and creativity, but of the use and destruction of what others have made for us. We think that the feelings experienced by people of our own time and circle are very significant and diverse, but in reality almost all the feelings of people of our circle come down to three very insignificant and uncomplicated feelings: the feelings of pride, sexual lust, and the tedium of living. And these three feelings, with their ramifications, make up almost exclusively the contents of the art of the wealthy classes. 우리 범주의 사람들, 미학자들은, 흔히들 정반대를 생각하고 말한다. 나는 지성적이며 교육받은 사람인 작가 곤차로프를 기억하는데, 그는 비록 도시 거주자며 미학자면서도,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메모 후에 민중의 삶에 대해 쓸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에게는 너무나 단순해서 투르게네프의 사람들의 이야기들 후에 더 이상 묘사할 것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의 삶은, 애정 행각들 및 자기 불만족들로 가득 차서 그에게는 무한한 내용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 것이다. 어떤 주인공이 그의 숙녀의 손에 , 다른 사람은 팔꿈치에, 그리고 제 삼자는 다른 방법으로  키스했다. 한 사람은 게을러서, 다른 사람은 사랑을 잃어서  비참해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 분야에서 다양성의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의견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은 내용이 빈약하고 반면에 우리의 삶, 게으른 사람들의 삶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의견은, 우리 범주의 대단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된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은, 해상이든 육상이든 그와 연관되는 무한히 다양한 모습들의 노동과 위험들로 차있고, 여행들, 경영자들, 상관들, 동료들과 거래들, 다른 종교들 및 국적들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하며, 자연, 야생동물들과의 투쟁, 가축들과의 관계들, 숲 속, 초원, 밭들, 농장, 채소밭에서의 그의 노동들, 아내와 자식들과의 관계들로 함께하며, 가까우며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에서 동료들, 조수들, 대체 일꾼들로서, 모든 경제 문제들에 대한 그의 관계, 토론 혹은 허영의 주제로서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문제들이 있고, 자족하는 자존심 및 타인들에 대한 봉사로서, 휴식 시간의 즐거움,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향한 종교적 경향들이 스며든 이 모든 관심들은 — 아무런 관심들 및 아무런 종교적 깨달음을 지니지 못하는 우리에게, 이런 삶은 우리 조그만 쾌락들 및 사소한 관심들에 비해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것은 노동 및 창의성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만든 것을 이용하며 파괴하는 것에 대해서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 및 범주의 사람들에 의해 경험되는 느낌들이 매우 의미심장하고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범주의 사람들의 거의 모든 느낌들은 세 가지의 매우 하찮고 단순한 느낌들로 귀착된다: 허영, 성욕, 그리고 삶의 권태의 느낌들. 그리고 이들 세가지 느낌들은, 그것들의 곁가지들과 함께, 거의 배타적으로 부유한 계급들의 예술의 내용들을 구성한다.
Earlier,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separation of upper-class art from popular art, the chief content of art was the feeling of pride. So it was during the time of the Renaissance and after, when the chief subject of works of art was praise of the powerful — popes, kings, dukes. Odes, madrigals, cantatas, hymns were written in their praise; their portraits were painted, their statues were sculpted, glorifying them in various ways. Later the element of sexual lust began to enter art more and more, becoming (with very few exceptions, and in novels and dramas with no exceptions) the necessary condition of every work of art of the wealthy classes. 이전에, 상류 계급의 예술이 대중 예술에서 분리되던 바로 초기에, 예술의 주된 내용은 허영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및 이후에는 예술 작품들의 핵심 주제는 권력 — 교황들, 왕들, 군주들 — 의 찬양이었다. 송시들, 소 연가들, 칸타타들, 및 찬송가들이 그들을 찬양하기 위해 쓰여졌다; 그들의 초상화들이 그려졌으며, 그들의 형상들이 조각되어서, 다양한 방법들로 그들을 미화시켰다. 다음으로 성적 탐욕에 대한 요소가 더욱 더 많이 들어 찼으며, 부유한 계급들의 모든 예술 작품에(거의 예외 없이, 그리고 소설들 및 연극들에는 예외 없이) 필요 조건이 되었다.

 

Still later, the number of feelings conveyed by the new art was increased by the third feeling that makes up the content of the art of the wealthy classes — namely, the feeling of the tedium of living. This feeling was expressed at the beginning of the present century only by exceptional people — Byron, Leopardi and later Heine — but has recently become fashionable and is now expressed by the most banal and ordinary people. The French critic Doumic says quite correctly of the main feature of the works of the new writers: 조금 뒤에, 새로운 예술에 의해 전달되는 느낌들의 숫자는 부유한 계급들의 예술의 내용을 구성하는 세 번째 느낌 — 즉, 삶에 대한 권태의 느낌 — 으로 증가되었다. 이 느낌은 현 세기의 시작 무렵에 예외적인 사람들 — 바이런, 레오파디 및 후기의 하이네  — 에 의해서 표현되었지만 최근에 유행하였으며 현재는 대개의 진부하며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표현된다. 프랑스의 비평가 두미는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들의 주된 특징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말한다:
. . . c’est la lassitude de vivre, le mépris de l’époque présente. le regret d’un autre temps aperçu à travers l’illusion de l’art, le goût du paradoxe, le besoin de se singulariser, une aspiration de raffinés vers la simplicité, l’adoration enfantine du merveilleux, la séduction maladive de la rêverie, l’ébranlement des nerfs, surtout l’appel exaspere de la sensualité. [52] '... 그것은 삶에 대한 실증, 현 시대에 대한 경멸, 예술이란 환상을 통해 인식되는 다른 시대, 역설에 대한 취향, 자신을 알리고 싶은 필요, 세련된 사람들의 단순성을 향한 갈망, 경이로운 것들에 대한 유아적 숭배, 몽상에 대한 병적인 유혹, 차분하지 않은 신경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욕에 대한 짜증나는 호소이다.'
And, indeed, of these three feelings, sensuality, being the lowest, accessible not only to all people but also to all animals, constitutes the chief subject of all works of art in modern times. 그리고, 사실상, 이 세가지 느낌들 중에서, 육욕은, 가장 저급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현 시대들에 있어서 모든 예술 작품들의 핵심 주제를 구성한다.
From Boccaccio to Marcel Prevost, [53] all novels, narrative poems and lyrics invariably convey feelings of sexual love in its various forms. Adultery is not just the favorite but the only theme of all novels. A performance is not a performance unless women bared above or below appear in it under some pretext. Ballads, songs — all these express lust with various degrees of poeticizing. 보카치오부터 마르셀 프레보스트까지, 모든 소설들, 설화체 시들 및 서정시들은 한결같이 다양한 형태들로 성적인 사랑의 느낌들을 전달한다. 간통은 모든 소설들의 단골 및 유일한 주제이다. 공연은 어떤 핑계든지 그 안에 상체나 하체를 벌거벗은 여자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공연이 아니다. 발라드, 가요들 — 이 모든 것들은 다양하게 시적인 분위기로 육욕을 표현한다.
The majority of paintings by French artists portray female nakedness in various forms. There is hardly a page or a poem in the new French literature without a description of nakedness or the use here and there, appropriately or inappropriately, of the favorite word and notion nu [‘nude’]. There is a certain writer named Remy de Gourmont, who is published and considered talented. In order to form an idea of the new writers, I read his novel Les chevaux de Diomède. [54] This is an unbroken, detailed description of the sexual relations some gentleman had with various women. Not a page is without lust-arousing descriptions. It is the same with Pierre Louys’s successful book Aphrodite, and the same with another book I recently came across, Certains, by Huysmans, [55] which is supposed to be a criticism of painters; it is the same, with the rarest exceptions, in all French novels. These are all works by people suffering from erotic mania. These people are apparently convinced that, since their entire life, as a result of their morbid condition, is concentrated on the smearing about of sexual abominations, it must mean that the entire life of the world is concentrated on the same thing. And the entire artistic world of Europe and America imitates these people suffering from erotic mania. 프랑스 화가들에 의한 대부분의 그림들은 다양한 형태들로 여성의 나체를 묘사한다. 새로운 프랑스 문학의 글이나 시에서 나체에 대한 묘사 혹은 여기 저기에 적합하게 혹은 부적합하게 즐겨 찾는 단어 및 개념인 nu ['나체']의 사용이 없는 것은 거의 없다. 레미 구몽이라는 어떤 작가가 있다, 그의 작품은 출판되고 있으며 재능이 있다고 여겨진다. 새로운 작가들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나는 그의 소설 Les chevaux de Diomède를 읽어 보았다. 이것은 어떤 신사가 많은 여성들과 가진 성 관계들에 대한 연속적이며 상세한 묘사이다. 단 한 페이지도 육욕을 일깨우는 묘사들이 없는 것이 없다. 삐에르 루이스의 성공적인 책 Aphrodite의 경우도 마찬가지며, 내가 우연히 읽은 다른 작가 휘스망의 Certains도 동일하며, 그것은 화가들에 대한 비평이다; 드문 예외들을 제외한다면, 모든 프랑스 소설들에서 동일하다. 이것들은 모두 호색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 의한 작품들이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그들의 병적인 상태의 결과로서 그들의 전체 삶이 성적인 혐오들에 대한 묘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의 전체 삶이 동일한 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유럽 및 아메리카의 전체 예술 세계는 호색증에 빠진 이런 사람들을 흉내 내고 있다.
And so, as a result of the unbelief and the exclusive life of the upper classes, the art of these classes became impoverished in content and was all reduced to the conveying of the feelings of vanity, the tedium of living and, above all, sexual lust. 그리고 상류 계급들의 불신앙 및 배타적 삶의 결과로, 이런 계급들의 예술은 내용이 빈곤해졌으며 모두가 허영, 삶의 권태 및, 무엇보다, 성적 탐욕의 느낌들을 전달함으로 전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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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