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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인가?

by Leo Tolstoy


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But if art is a human activity the aim of which is to convey to others the loftiest and best feelings people have attained to in life, how could it happen that mankind should live a certain, rather long, period of its life — from the time when people ceased to believe in the Church teaching down to the present day — without this important activity, and be satisfied instead with the worthless activity of art that merely affords pleasure? 그러나 만일 예술이 인간의 활동으로 그 목적은 삶에 있어서 사람들이 성취하는 가장 숭고한 그리고 가장 선한 느낌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면, 인류가 어느 정도, 상당히 긴 삶의 기간 —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믿는 것을 중단한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 을 이런 중요한 활동 없이 살며, 대신에 단순히 쾌락을 제공하는 가치 없는 예술 활동에 만족한다는 것이 어찌 일어날 수 있는가?
In order to answer this question, it is necessary first of all to correct the error people commonly make in ascribing to our art the significance of true, universally human art. We are so used to regarding naively as the best human race not just the Caucasian race, but also the Anglo-Saxon if we are English or American, the German if we are German, the Gallo-Latin if we are French, and the Slavic if we are Russian, that when we speak of our art, we are as fully convinced that it is not only true art, but is also the best and the only art. Yet not only is our art not the only art, as the Bible used to be regarded as the only book, but it is not even the art of all Christian mankind, but just the art of a very small section of that part of mankind. It was possible to speak of Hebrew, Greek or Egyptian national art, as it is now possible to speak of a Chinese, Japanese or Indian art common to the whole nation. Such art, common to the whole nation, existed in Russia before Peter the Great, and also in European societies until the thirteenth or four­teenth century; but since people of the upper classes of European society, having lost faith in the Church teaching, did not embrace true Christianity and were left with no faith at all, it is no longer possible to speak of the art of the upper classes of Christian nations as if it were the whole of art. Since the upper classes of the Christian nations lost their faith in Church Christianity, their art has become separated from the art of the whole people, and there have been two arts: the art of the people, and the art of the masters. And therefore the answer to the question of how it could happen that mankind should live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without real art, having replaced it with art that serves pleasure alone, is that it was not the whole of mankind that lived without true art, and not even a considerable part of it, but only the upper classes of European Christian society, and that only for a short period of time — from the beginning of the Renaissance and Reformation to our own day.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리의 예술에 대해 참되고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예술의 의미를 갖다 붙임에 있어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를 시정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순진하게도  코카서스인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일 영국 혹은 미국인이라면 앵글로 색슨족, 우리가 독일인이라면 게르만족을, 프랑스인이라면 골-라틴족, 러시아인이라면 슬라브족을 가장 선한 인류로 여김에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의 예술을 논할 때, 우리는 그것이 참된 예술일 뿐만 아니라, 가장 선한 유일의 예술이라고 완전히 확신한다. 하지만 우리의 예술은, 마치 성경이 흔히 유일한 책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유일한 예술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든 그리스도교 인류의 예술도 아니다, 그러나 인류의 일부의 아주 조그만 지역의 예술이다. 전체 국가에 공통인 중국, 일본 혹은 인도 예술에 대해 지금 이야기함이 가능하듯이, 히브리, 그리스 혹은 이집트 국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함은 가능했다. 그러한 예술은, 전체 국민에 공통으로, 피터 대제 이전의 러시아에, 그리고 또한 13 혹은 14세기까지 유럽 사회들에 존재했다; 그러나 유럽 사회의 상류 계급들의 사람들이, 교회 가르침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고 나서,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지 않고 아무런 신앙을 지니지 않게 된 후로부터, 마치 그 예술이 예술 전체인 것처럼 그리스도교 국민들의 상류 계급들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리스도교 국민들의 상류 계급들이 교회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앙을 상실한 후로, 그들의 예술은 전체 민중의 예술에서 분리되었으며, 두 가지 예술들이 존재해 왔다: 민중의 예술, 그리고 지배자들의 예술. 그러므로 인류가 어떤 기간 동안 참된 예술 없이, 그것을 오직 쾌락에 도움이 되는 예술로 대체하고서, 산다는 일이 어찌 일어 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참된 예술 없이 산 것은 인류 전체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그 상당한 일부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직 유럽 그리스도교 사회의 상류 계급들만이, 그리고 그것도 오직 짧은 기간 동안만 —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작부터 우리 자신의 시대까지 — 그렇게 산 것이다.
And the consequence of this absence of true art has proved to be the very one it had to be: the depravity of the class that avails itself of this art. All the confused, incomprehensible theories of art, all the false and contradictory judgments of it, and, above all, the self-confident stagnation of our art on its own erroneous path — all this is the result of the assertion, now commonly in use and taken as an indisputable truth, but striking in its obvious falseness, that the art of our upper classes is the whole of art, the only true, universal art. In spite of the fact that this assertion, perfectly identical with the assertions of religious people of various confessions who consider theirs the only true religion, is perfectly arbitrary and clearly incorrect, it is calmly repeated by all people of our circle with complete confidence in its infallibility. 그리고 이 같은 참된 예술의 결여의 결과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예술을 이용하는 계급의 타락. 모든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예술 이론들, 그것에 대한 모든 위선적이며 모순적인 판단들, 무엇보다도, 그 자체의 잘못된 길에서 우리 예술의 자명한 정체 — 이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주장, 즉,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논란의 여지 없는 진리로 여겨지면서도, 그 명백한 위선이 두드러지는, 우리 상류 계급들의 예술이 예술의 전부이며 유일하게 참된 보편적인 예술이라는, 주장의 결과였다. 이 주장이, 그들의 것이 유일한 참된 종교라고 여기는 다양한 단체의 종교적 사람들의 주장들과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완전히 독단적이며 명백히 부정확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 범주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그것의 무오류에 대한 완전한 확신으로 조용히 반복되고 있다.
The art we possess is the whole of art, the true, the only art, and yet not only do two-thirds of the human race, all the peoples of Asia and Africa, live and die without knowing this only true art, but, furthermore, barely one per cent of all the people in our Christian society benefit from this art which we call the whole of art; the remaining ninety-nine per cent of our European people live and die by generations, working hard, without ever tasting this art, which besides is of such a kind that, even if they could avail themselves of it, they would not understand anything. We, according to the aesthetic theory we confess, recognize that art is either one of the highest manifestations of the idea, of God, of beauty, or else is the highest spiritual pleasure; besides that, we recognize that all people have equal rights, if not to material, at least to spiritual, blessings; and meanwhile ninety-nine per cent of our European people, generation after generation, live and die working hard at tasks necessary for the production of our art, from which they do not benefit, and even so we calmly assert that the art we produce is the real, the true, the only, the whole of art. 우리가 소유한 예술이 예술의 전부이고, 참되며, 유일한 예술이다, 그러나 인류의 삼분의 이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모든 민중들은, 이런 유일하게 참된 예술을 모른 채 살고 죽는다, 하지만, 게다가, 우리의 그리스도교 사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일 퍼센트 만이 우리가 예술의 전부라고 부르는 이런 예술에서 이익을 얻는다; 우리 유럽 사람들의 나머지 구십구 퍼센트는, 열심히 일하며, 이런 예술을 맛보지도 못한 채, 대를 이어 살고 죽으며, 그것은 게다가, 비록 그들이 그것을 접할 수 있더라도,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미학 이론에 의하면, 예술은 이념, 신, 아름다움의 최고의 표현들 중의 하나이거나, 최고의 정신적 쾌락이라고 인식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물질에 대해선 아니더라도 적어도 정신적인 행복들에 대해선 평등한 권리들을 가진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유럽 사람들의 구십구 퍼센트가, 세대마다, 우리 예술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과업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죽으며,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받지도 못하고, 그럼에도 우리는 조용히 주장하기를 우리가 만드는 예술이 사실이며, 진리이며, 유일하며 전체인 예술이라고 한다.
To the observation that if our art is the true art, all people ought to benefit from it, the usual objection is that if not all benefit from existing art, it is not the art that is to blame, but the wrong organization of society; that it is possible to imagine that in the future physical labor will partly be replaced by machines, will partly be lightened by its proper distribution, that the work of producing art will be done in turns; that there is no need for the same people constantly to sit under the stage, moving the scenery, lifting machinery, and playing on the piano or the French horn, or setting type and printing books, and that those who do all that can work a small number of hours a day and in their free time benefit from all the blessings of art. 만일 우리 예술이 참된 예술이라면,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그것으로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일반적인 반론은, 만일 기존의 예술에서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면,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구조라는 것이며; 미래에는 육체 노동이 기계들로 일부 교체되고, 일부는 적절한 분배로 가벼워 질 것이라는 것, 예술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교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 똑같은 사람이 계속해서 무대 아래에 앉아서, 배경을 움직이고, 장치를 들어 올리고, 피아노를 치거나 혹은 프랑스 혼을 연주하거나, 혹은 타자를 치고 책을 인쇄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오직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할 수 있으며 그들의 여유 시간에 예술의 모든 축복들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So say the defenders of our exclusive art, but I think that they themselves do not believe what they say, because they cannot be unaware that our refined art could emerge only on the slavery of the popular masses and can continue only as long as this slavery exists, and that the specialists — writers, musicians, dancers and actors — can reach that refined degree of perfection only on condition of the hard work of laborers, and that only on these conditions can there exist the refined public to appreciate such works. Free the slaves of capital and it will be impossible to produce such refined art. 이렇게 우리의 배타적 예술의 옹호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 자신도 그들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세련된 예술이 오직 일반 민중의 고역 위에 나타날 수 있으며 오직 이런 고역이 존재하는 한에서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전문가들 — 작가들, 음악가들, 무용수들 및 연기자들 — 은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이라는 조건 위에서 그 같은 세련된 완성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직 이런 조건들 위에서 그러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세련된 대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But even if we admit the inadmissible — that is, that methods can be found to make it possible for all people to benefit from art (or what is regarded as art among us) — another consideration presents itself, showing why present-day art cannot be the whole of art, namely, that it is totally incomprehensible for the people. Poetic works were once written in Latin, but nowadays works of art are as incomprehensible for the people as if they were written in Sanskrit. To this the usual reply is that if the people do not understand our art now, it only proves that they are undeveloped, exactly as it has been with every new step in art. First it was not understood, but later they got used to it. 그러나 우리가 비록 인정할 수 없는 것 — 즉, 모든 사람들이 예술 (혹은 우리 사이에서 예술로 여겨지는 것) 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방법들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 —  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민중들에게 전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다른 사항이 드러나서, 왜 오늘날의 예술이 예술 전체가 될 수 없는가를 보여준다. 시 작품들은 과거에 라틴어로 쓰여졌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 작품들은 그것들이 마치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것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이점에 대해서 일반적인 답변은 만일 사람들이 지금 우리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에서 제각기 첫걸음에 정확히 있어 왔듯이, 단지 그들이 미개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The same will happen with present-day art: it will become comprehensible when all the people are as educated as we upper-class people are who produce this art,’ say the defenders of our art. But this assertion is obviously still more incorrect than the first one, because we know that the majority of upper-class works of art, such as various odes, narrative poems, dramas, cantatas, pastorals, paintings and so on, which upper-class people admired in their time, have never afterwards been either understood or appreciated by the great masses, and have remained what they always were — an amusement for the wealthy people of their time, for whom alone they had any significance. From this one can conclude that the same will happen with our art. And when, to prove that the people will in time come to understand our art, it is said that some works of so-called classical poetry, music and painting, which the masses did not like at first, they began to like later, after these works were offered to them from all sides, it only proves that the mob, and a city mob, half corrupted to begin with, can always easily be made accustomed, by perverting its taste, to any art you like. And besides, this art is not produced by the mob, and is not chosen by the mob, but is forcefully thrust upon it in those public places where it has access to art. For the vast majority of working people, our art, inaccessible to them because of its costliness, is also alien to them in its very content, conveying the feelings of people far removed from the conditions of the laboring life led by the greater part of mankind. That which constitutes pleasure for a man of the wealthy classes is not perceived as pleasure by a working man, and calls up in him either no feelings at all, or else feelings completely contrary to those it calls up in an idle and satiated man. Thus, for example, the feelings of honor, patriotism and amorousness, which constitute the main content of present-day art, call up in a working man only perplexity, scorn or indignation. So that even if the majority of working people were given the opportunity, in their time off from labor, to see, to read, to hear — as they do somewhat in the cities, in picture galleries, popular concerts, books — all that constitutes the flower of present-day art, these working people, to the extent that they are working people and do not yet belong partly to the category of those perverted by idleness, would understand nothing of our refined art, and even if they did, the greater part of what they understood would not only not elevate their souls, but would corrupt them. So that for sincere and thinking people there can be no doubt that the art of the upper classes can never become the art of the whole people. And therefore, if art is an important thing, a spiritual blessing, as necessary for all people as religion (as admirers of art like to say), it must then be accessible to all people. And if it cannot become art for all people, then one of two things: either art is not as important as it is made out to be, or the art which we call art is not important. '똑같은 현상이 오늘날의 예술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모든 민중들이 이 예술을 창조하는 우리 상류 계급 사람들 만큼 교양이 있을 때 이해될 수 있다,'고 우리 예술의 옹호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명백히 전자의 것보다 훨씬 더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다수 상류 계급의 예술 작품들이, 예를 들면 다양한 송가들, 설화시들, 연극들, 대성악곡들, 전원시들, 그림들 등을, 상류 계급 사람들이 그들의 시대에 칭찬하였지만, 그 후로 결코 대중들에 의해 이해되었거나 감상되지 않았으며, 언제나 그것들이 있던 대로 남아 있었다 — 그들 시대의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오락, 그것들은 오직 그들을 위해  어떤 의미가 있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똑같은 상황이 우리의 예술에도 발생하리라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민중이 때가 되면 우리의 예술을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 소위 고전 시, 음악 및 그림 작품들은, 민중들이 처음에 그것들을 좋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후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오직 민중들, 그리고 도시의 민중들이, 시작부터 반쯤 타락하여서, 그들의 취향을 왜곡시킴으로써,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떤 예술에든지 언제나 쉽게 적응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게다가, 이 예술은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 지지 않으며, 대중들에 의해 선택되지도 않지만, 예술이 가능한 공공 장소들에서 강제적으로 디밀어 진다. 노동하는 사람들 절대 다수에게 우리 예술은 너무 비싸서 접근할 수 없으며, 또한 그 내용 자체부터 그들에게 이질적이며, 인류의 대부분에 의해 영위되는 노동하는 삶의 조건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사람들의 느낌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계급들의 사람을 위한 쾌락을 구성하는 것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쾌락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아무런 느낌들을 불러 내지 못하거나, 혹은 나태하거나 포만감을 느끼는 사람 안에서 불러내는 것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느낌들을 불러낸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명예, 애국심 및 연애의 느낌들은, 이것들은 오늘날 예술의 핵심 내용을 구성하는 것으로, 노동하는 사람 안에서 오직 당혹감, 경멸 혹은 분노를 자아낸다. 그래서 대다수 노동하는 사람들이, 노동을 떠나 그들의 시간에 — 그들이 어느 정도 도시들에서, 화랑들에서, 대중 연주회들에서, 책들에서 — 보고 읽고 들을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오늘날 예술의 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그들이 노동하는 사람들이며 아직 부분적으로 나태함으로 왜곡된 사람들의 범주에 소속되지 않은 한,  우리의 세련된 예술에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그들이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해한 더 많은 부분은 그들의 정신들을 고취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타락시킬 것이다. 그래서 성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상위 계급들의 예술이 결코 전체 사람들의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러므로, 만일 예술이 중요한 것이라면, 일종의 정신적 축복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술의 찬미자 들이 말하기 좋아하듯) 종교 만큼이나  필요하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용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 될 수 없다면, 둘 중의 하나이다: 예술이 주장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거나,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예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This dilemma is insoluble, and therefore intelligent but immoral people boldly resolve it by denying one side of it — namely, the right of the popular masses to benefit from art. These people give direct utterance to what lies at the heart of the matter, which is that only the schöne Geister, the elect, as the romantics called them, or the ‘supermen’, as they have been called by Nietzsche’s followers, can partake of and benefit from the supremely beautiful (in their understanding) — that is, the loftiest pleasure of art. The rest, the crude herd, unable to experience these pleasures, must serve the lofty pleasures of this higher race of men. Those who voice such views at least do not pretend and do not want to combine the uncombinable, but admit directly what happens to be the case — namely, that our art is the art of the upper classes only. This, essentially, is how art has been and is understood by all people occupied with the arts in our society. 이 딜레마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적이지만 부도덕한 사람들은 대담하게 그것의 한쪽 면 — 즉, 대중들이 예술에서 이익을 얻을 권리 — 을 부정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한다. 이 사람들은 문제의 심층부에 놓인 것을 직접 언급하며, 그것은 바로, 오직 몽상가들이 그들을 일컫듯,  schöne Geister, 선택된 자들, 혹은 니체의 추종자들에 의해 그들이 불려졌듯이, '초인간들'이 (그들의 이해 안에서) 최고의 아름다움 — 즉, 가장 숭고한 예술의 쾌락 — 을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들, 세련되지 못한 무리들은, 이런 쾌락들을 경험할 수 없고,  이 고등 인류의 숭고한 쾌락들을 시중들어야만 한다. 그러한 견해들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결합할 수 없는 것을 결합하려 하는 척 하거나 의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경우가 되는 것 —  즉, 우리의 예술은 상류 계급들 만의 예술이라는 것 — 을 직접 인정한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예술들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예술이 이해되어 왔으며 이해되고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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