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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by Leo Tolstoy

TRANSLATED BY RICHARD PEVEAR
AND LARISSA VOLOKHONSKY

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VI

   
But how could it happen that the same art, which in antiquity was either barely tolerated or altogether rejected, should come to be regarded in our time as invariably a good thing, provided it affords pleasure? 그렇지만, 어찌하여 똑같은 예술이, 고대에는 거의 용인되지 않았거나 전적으로 거부되었으면서, 우리 시대에는, 그것이 쾌락을 제공한다면, 예외 없이 유익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가?
It happened for the following reasons. 그것은 다음의 이유들 때문에 발생하였다.
The appreciation of the merits of art — that is, of the feelings it conveys — depends on people’s understanding of the meaning of life, on what they see as good and evil in life. Good and evil in life are determined by what are called religions. 예술의 장점들에 대한 — 즉, 그것이 전달하는 느낌들의 — 이해는 삶의 의미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에, 삶 안에서 그들이 선하거나 악하다고 깨닫는 것에  달려 있다. 삶 안에서 선과 악은 종교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Mankind ceaselessly moves from a lower, more partial and less clear understanding of life to one that is higher, more general and clearer. And, as in every movement, so in this movement there are leaders — those who understand the meaning of life more clearly than others — and among these leading people there is always one who, in his words and in his life, has more vividly, accessibly and forcefully manifested this meaning of life. This man’s manifestation of this meaning of life, together with the traditions and rites that usually form around the memory of such a man, is called religion. Religions are indicators of the highest understanding of life accessible at a given time in a given society to the best of the leading people, which is inevitably and unfailingly approached by all the rest of society. And, only because of that, religions have always served and still serve as a basis for evaluating people’s feelings. If their feelings bring people closer to the ideal to which their religion points, agree with it, do not contradict it — they are good; if they move them away from it, disagree with it, contradict it — they are bad.

 

인류는 끊임 없이 더 낮고, 더 편파적이며 덜 명료한 삶의 이해로부터 더 높고, 더 일반적이며 더 명료한 것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각각의 움직임에서 그러하듯이, 이런 움직임에서도 선도자들 — 삶의 의미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명료하게 이해하는 사람들 — 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선도적인 사람들 중에는 언제나, 그의 말들 및 그의 삶 안에서, 이런 삶의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쉽게 그리고 강력하게 표현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삶의 의미에 대한 이 사람의 표현은, 그러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주로 형성되는 전승들 및 의식들과 더불어, 종교라고 불린다. 종교들은 주어진 시대에 주어진 사회에 선도적인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최고의 이해에 대한 지표들로, 이것은 사회의 나머지 모두에 의해 필연코 그리고 틀림없이 이행된다. 그리고, 오로지 그런 이유 때문에, 종교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느낌들을 평가하는 토대로 작용했으며 아직도 그러하다. 만일 그들의 느낌들이 사람들을 그들의 종교들이 지향하는 이상에 더 가까이 데려가고, 그것에 동의하며, 그것을 반박하지 않는다면 — 그것들은 선한 것이다; 만일  느낌들이 그것들을 멀리 밀어내며, 그것에 찬성하지 않으며, 그것을 반대한다면 — 느낌들은 악한 것이다.
If religion places the meaning of life in the worship of one God and the fulfilling of what is regarded as his will, as with the Jews, then the feelings resulting from the love of this God and his law, conveyed by art — the sacred poetry of the prophets, the Psalms, the stories in the book of Genesis — make for good, high art. Everything opposed to that, such as conveying the feeling of the worship of alien gods, or feelings discordant with the law of God, will be regarded as bad art. If religion places the meaning of life in earthly happiness, in beauty and strength, then art that conveys the joy and zest of life will be considered good art, while art that conveys feelings of delicacy or dejection will be bad art, as was thought among the Greeks. If the meaning of life lies in the good of the nation or in continuing the way of life of the ancestors and revering them, then art that conveys the feeling of joy in the sacrifice of personal good for the good of the nation or the glorification of the ancestors and the maintaining of their tradition will be considered good art, while art that expresses feelings contrary to these will be considered bad, as among the Romans and the Chinese. If the meaning of life lies in liberating oneself from the bonds of animality, then art that conveys feelings which elevate the soul and humble the flesh will be good art, as it is regarded among the Buddhists, and all that conveys feelings which enhance the bodily passions will be bad art. 만일 종교가, 유대인에게 그런 것처럼, 삶의 의미를 유일 신의 숭배 그리고 그의 뜻으로 여겨지는 것의 이행에 두고 있다면, 이런 신과 그의 율법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느낌들은, 예술 — 선지자들의 신성한 시, 시편, 창세기의 이야기들 — 에 의해 전달되고, 선하며 숭고한 예술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것에 반하는 모든 것, 예를 들면 이방의 신들을 숭배하는 느낌, 혹은 신의 율법에 어긋나는 느낌들을 전달함은 악한 예술로 여겨질 것이다. 만일 종교가 세속적 행복, 아름다움과 힘에 삶의 의미를 둔다면, 삶의 환희와 자극을 전달하는 예술이,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선한 예술로 여겨질 것이다. 만일 삶의 의미가 국가를 위함이나 선조들의 삶의 방식을 계승하고 그들을 공경함에 있다면, 국가의 선을 위해 개인의 선을 희생하는 기쁨 혹은 선조들의 찬미 및 그들의 전통을 계승함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는 예술이 선한 예술로 여겨질 것이며, 한편으로 이런 것들에 반하는 느낌들을 표현하는 예술은, 로마인들 및 중국인들 사이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악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만일 삶의 의미가 동물성의 굴레에서 자신을 해방시킴에 있다면, 정신을 고양하고 육신을 낮추는 느낌들을 전달하는 예술이, 불교인들 사이에서 그러하듯이, 선한 예술일 것이며, 육신의 열정들을 부추기는 느낌들을 전달하는 모든 것은 악한 예술일 것이다.
Always, in all times and in all human societies, there has existed this religious consciousness, common to all people of the society, of what is good and what is bad, and it is this religious consciousness that determines the worth of the feelings conveyed by art. And therefore, always, in all nations, art that conveyed feelings resulting from the religious consciousness common to the people of the nation was recognized as good and was encouraged, while art that conveyed feelings discordant with the religious consciousness was recognized as bad and was rejected; the whole enormous remaining field of art by which the people communicated among themselves was not valued at all, and was rejected only when it ran counter to the religious consciousness of its time. So it was among all nations: Greeks, Jews, Hindus, Egyptians, Chinese. So it was, too, when Christianity appeared. 언제나, 모든 시대들과 모든 인간 사회들에서,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에 대한 이 같은 종교적 의식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바로 이 같은 종교적 의식으로서 예술에 의해 전달되는 느낌들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러므로, 언제나, 모든 국가들에서, 국가의 민중들에게 공통적인 종교적 인식에서 비롯된 느낌들을 전달하는 예술은 선하다고 인정되고 장려 되었으며, 반면에 종교적 인식에 어긋나는 느낌들을 전달하는 예술은 악하다고 여겨져서 거부되었다; 민중이 그들 사이에서 교제하던 거대한 나머지 전체 예술의 분야는 전혀 가치 없다고 여겨졌으며, 오직 그 시대의 종교적 의식에 정면으로 대치할 때 거부되었다. 그것은 모든 국가들 사이에서 그러했다: 그리스인들, 유태인들, 힌두인들, 이집트인들, 중국인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나타났을 때도 역시 그러했다.
Christianity of the earliest time recognized as good works of art only legends, saints’ lives, sermons, prayers, hymns that called up in people the feeling of love for Christ, of being moved by his life, the desire to follow his example, the renunciation of earthly life, humility, and love for others. All works that conveyed feelings of personal pleasure were regarded as bad, and therefore Christianity rejected all pagan plastic art, allowing only symbolic plastic images. 초기의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그의 삶에 의해서 감동 받음에 대한 느낌을, 그의 본을 따르려는 욕망을, 세속적 삶을 포기함, 겸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사람들 안에 불러 일으키는, 전설들, 성자들의 삶, 설교들, 기도들, 찬송들 만을 오직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고 인정했다. 개인적 쾌락의 느낌들을 전달하는 모든 작품들은 악하다고 여겨졌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모든 이교적인 조형 예술을 거부했으며, 오직 상징적 조형 영상들만을 허용했다.
So it was among Christians of the first centuries, who received the teaching of Christ, if not quite in its true form, still not in a perverted one, not in a pagan form such as was accepted later on. But with the wholesale conversion of nations to Christianity, by a ruler’s decree, as under Constantine, Charlemagne, and Vladimir, [42] there appeared a different, a Church Christianity, closer to paganism than to the teaching of Christ. And this Church Christianity, on the basis of its own teaching, began to evaluate quite differently the feelings of men and the works of art that conveyed them. This Church Christianity not only did not recognize the basic and essential theses of true Christianity — the direct relation of each person to the Father and, following from that, the brotherhood and equality of all men, resulting in the replacement of all forms of violence by humility and love — but, on the contrary, having established a heavenly hierarchy, similar to pagan mythology, and the worship of it, the worship of Christ, of the Mother of God, of angels, apostles, saints, martyrs, and not only of these divinities but also of their images, Church Christianity set up blind faith in the Church and its statutes as the essence of its teaching. 초기 몇 백 년 그리스도교인 사이에서 그러했으며,  그들은, 그리 참된 모습은 아닐지라도 아직 타락한 것은 아니었으며, 후대에 수용된 것 같은 이교적이 아닌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국가들이, 콘스탄틴, 샤를마뉴, 그리고 블라드미르 치하에서처럼, 통치자의 칙령에 따라 그리스도교로 도매금으로 개종함과 더불어, 일종의 이질적인, 일종의 교회 그리스도교가 나타났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는 이교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교회 그리스도교는, 그 자신의 가르침을 기초로, 사람들의 느낌들과 그것들을 전달하는 예술 작품들을 매우 다르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교회 그리스도교는 참 그리스도교 기본적 및 근본적 주장들 — 신에 대한 제각기 사람의 직접적 관계 그리고, 그러함의 결과로, 모든 사람들의 형제애 및 평등, 그 결과로 폭력의 모든 형태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대체함 — 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이교의 신화와 유사한 천사 계급, 그것에 대한 숭배, 그리스도에 대한, 성모에 대한, 천사들, 사도들, 성자들, 순교자들에 대한, 그리고 이들의 신성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우상들에 대한 숭배를 확립하고 나서, 교회 그리스도교는 교회와 교회의 규정들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그 가르침의 본질로 확립하였다.
However foreign this teaching was to true Christianity, however base it was in comparison not only with true Christianity, but even with the world view of such Romans as Julian, [43] still, for the barbarians who embraced it, it was a loftier teaching than their former worship of gods, heroes, good and evil spirits. And therefore this teaching was a religion for the barbarians who embraced it. And it was on the basis of this religion that the art of the time was evaluated; art that portrayed the pious veneration of the Mother of God, Jesus, saints, angels, blind faith in and obedience to the Church, fear of torments and hope of bliss in the life after death, was considered good; art opposed to that was all considered bad. 이 가르침이 참 그리스도교에 아무리 이질적이었든, 그것이 참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줄리안 같은 로마인들의 세계관과 비교하여 얼마나 천한 것이었든,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야만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들의 신들, 영웅들, 선하고 악한 영들에 대한 과거의 숭배보다 더 고상한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그것을 수용한 야만인들에겐 종교였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종교를 토대로 그 시대의 예술은 평가되었다; 성모, 예수, 성자들, 천사들에 대한 깊은 숭배, 교회에 대한 맹목적 신앙 및 복종, 고통들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의 삶 안에서의 축복의 희망을 그리는 예술은 선하게 여겨졌다; 그러한 것에 대치되는 예술은 모두 악하다고 여겨졌다.
The teaching on the basis of which this art emerged was a perversion of the teaching of Christ, but the art that emerged from this perverted teaching was still true art, because it corresponded to the religious world view of the people among whom it emerged. 이런 예술이 출현하게 된 토대인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왜곡이었지만, 이런 왜곡된 가르침으로부터 출현한 예술은 아직도 참된 예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예술이 출현한 민중에서의 종교적 세계관에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The artists of the Middle Ages, sharing the same religion with the popular masses as the basis for their feelings, while conveying in architecture, sculpture, painting, music, poetry and drama the feelings and moods they experienced, were true artists, and their activity, based on the highest understanding accessible to that time and shared by all, though low for our time, was still true art, common to the whole people. 중세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느낌들의 토대로서 일반 민중과 똑같은 종교를 공유하는 반면, 건축, 조각, 회화, 음악, 시 및 연극에서 그들이 경험한 느낌들과 기분들을 전달함으로써, 진정한 예술가들이었으며, 그들의 활동은, 그 시대에 허용된 최고의 이해를 기초로 하고 모두에 의해 공유되어서, 비록 우리 시대에 비해 낮지만, 여전히 참된 예술이었으며, 전체 민중에게 공통적이었다.
And so it was until the time when doubt of the truth of the understanding of life expressed by Church Christianity appeared among the upper, wealthy, more educated ranks of European society. But when, after the Crusades, after papal power became highly developed and likewise abused, after people of the wealthy ranks became familiar with ancient wisdom and saw, on the one hand, the reasonable lucidity of the ancient sages, and, on the other, the lack of correspondence between the Church’s teaching and the teaching of Christ, it became impossible for them to believe as before in the teaching of the Church. 그리고 교회 그리스도교에 의해 표현된 삶의 깨달음의 진리에 대한 의혹이 상류층의, 부유하며, 좀더 교육받은 유럽 사회 계급들 사이에 나타났을 때까지도 그러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 후에, 교황의 권력이 매우 발전되고 그와 더불어 남용된 후에, 부유한 계급들의 사람들이 고대의 지혜와 명언들에 친숙해진 뒤에, 한편으로 고대 현자들의 합리적 통찰력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가르침 사이의 교감의 부족으로, 그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옛날처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If ostensibly they still kept to the forms of the Church’s teaching, they were no longer able to believe in it and held to it only by inertia, or for the sake of the people, who continued to believe blindly in the teaching of the Church, and whom those of the upper classes considered it necessary to support in their belief for the sake of their own profit. So the Christian teaching of the Church ceased, at a certain moment, to be the general religious teaching of all Christian people. Some — the upper ranks, those in whose hands lay the power and wealth, and therefore the leisure and means to produce and encourage art — ceased to believe in the religious teaching of the Church, while the people went on blindly believing in it. 만일 그들이 표면상으로 아직 교회의 가르침의 형식들을 준수하고 있더라도, 그들은 더 이상 그것을 믿을 수 없으며 단지 무기력하거나, 혹은 계속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믿는 민중을 위해서, 그리고  상위 계급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믿음을 지지함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교회의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은, 어떤 순간에 이르러, 모든 그리스도교 사람들의 일반적 종교적 가르침이기를 멈추었다. 어떤 이들은 — 상위 계급들, 손아귀에 권력과 부가 놓여 있는 사람들, 그러므로 예술을 만들어 내고 장려할 여유와 수단을 가진 사람들 — 은 교회의 종교적 가르침을 믿기를 중단하였으나, 한편으로 민중은 그것을 계속해서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
With regard to religion, the upper ranks in the Middle Ages found themselves in the same situation as the educated Romans before the appearance of Christianity — that is, they no longer believed what the people believed; but they themselves had no belief that they could put in place of the obsolete Church teaching, which had lost its meaning for them. 종교와 관련하여, 중세의 상위 계급들은 그리스도교의 출현 앞에 그들 교육받은 로마인들과 똑같은 위치에 있음을 알았다 — 즉, 그들은 더 이상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쓸모 없는 교회의 가르침을 대신할 아무런 믿음도 없었으며,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그 의미를 잃어 버렸다.
The only difference was that, while the Romans who lost faith in their god-emperors and household deities, having nothing more to extract from all the complex mythology they had borrowed from all the peoples they had conquered, had to embrace an entirely new world view, the people of the Middle Ages who doubted the truth of the Church’s catholic teaching did not have to look for a new teaching. That Christian teaching, which they confessed in its perverted form as the Church’s catholic faith, had mapped out the path for mankind so far ahead that they had only to discard the perversions that obscured the teaching discovered by Christ and to adopt it, if not in all, then at least in a small part of its meaning (greater, however, than that adopted by the Church). This very thing was done in part not only by the Reformation of Wyclif, Hus, Luther, Calvin, but by the whole movement of non-Church Christians, represented in early times by the Paulicians, the Bogomils, and later the Waldensians, [44] and all other non-Church Christians, the so-called sectarians. But this could be done and was done by poor people, not the powerful. Only a few among the rich and strong, like Francis of Assisi and others, accepted the Christian teaching in this vital sense, though it destroyed their advantageous position. The majority of people of the upper classes, though at the bottom of their hearts they had already lost faith in the Church’s teaching, were unable or unwilling to do so, because the essence of the Christian world outlook they would be adopting, if they were to renounce the Church’s faith, was the teaching of the brotherhood and therefore the equality of men, and such a teaching would deny them the prerogatives by which they lived, in which they had grown up and been educated, and to which they were accustomed. At the bottom of their hearts they did not believe in the Church teaching, which had outlived its time and no longer had any true meaning for them, and since they were unable to adopt true Christianity, the people of these wealthy ruling classes — popes, kings, dukes, and all the mighty of this world — were left without any religion, with nothing but its external forms, which they maintained, considering it not only profitable but necessary for themselves, since this teaching justified the advantages they enjoyed. Essentially, these people did not believe in anything, just as the educated Romans of the first centuries did not believe in anything. And yet the power and wealth were in their hands, and it was they who encouraged art and guided it. And so it was among these people that an art began to grow up which was evaluated not by how well it expressed feelings resulting from the people’s religious consciousness, but only by how beautiful it was — in other words, how much pleasure it afforded. 유일한 차이는, 신과 같은 황제들 및 가족 신들에 대한 신앙을 상실한 로마인들이, 그들이 정복했던 모든 민중에게서 차용했던 복잡한 모든 신화들에서 더 이상 뽑아 낼 것이 없어지자,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수용했던 반면에, 교회의 가톨릭 가르침의 진리를 의심한 중세 민중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같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들이 교회의 가톨릭 신앙으로 왜곡된 모습으로 고백했던 것이며, 인류를 위해 저 멀리 까지 길을 예비했기에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가 발견한 가르침을 가리는 왜곡들을 버리고 그것을, 전체는 아니라도, 적어도 그 의미의 작은 일부 만이라도, 채택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교회가 채택한 것보다 큰 것이다). 바로 이런 일은 부분적으로 위클리프, 허스, 루터, 칼빈의 개혁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비 교회 그리스도인들 전체 운동에 의해서 행해졌으며, 초기에는 폴리시안, 보고밀, 및 후기의 왈도시안들, 그리고 소위 분파주의자들이라 불리는 다른 모든 비 교회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 질 수 있었고 이루어 졌지만,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는 아니었다.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 중 프란시스 아시시 등과 같이 오직 몇 만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그들의 유리한 지위를 파괴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 같이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상류 계급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밑바닥에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이미 상실해 버렸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거나 그렇게 할 의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의 신앙을 포기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채택하게 될 그리스도의 세상에 대한 전망의 핵심은, 형제애의 가르침 그러므로 사람들의 평등이며, 이러한 가르침은 그들이 누려왔던, 그들이 자라나서 교육받아 왔으며 그들이 적응해 왔던, 특권들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마음 밑바닥에서 그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믿지 않았고, 그것은 그 시대에 맞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더 이상 어떤 참된 의미를 가지지 못했고, 그리고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교를 채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 부유한 지배 계급들 — 교황들, 왕들, 군주들,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 — 의 사람들은 어떤 종교도 갖지 않았으며 오직 그것의 외적인 형태들만 지니게 되었고, 이 가르침이 그들이 누리던 이익들을 정당화시켰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여기면서 이것을 유지하였다. 근본적으로, 처음 몇 세기 동안 교육받은 로마인들이 아무것도 믿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권력과 부는 그들의 손 안에 들어 있었으며, 예술을 장려하고 그것을 이끈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래서 바로 이 사람들 안에서 하나의 예술이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민중의 종교적 의식에서 비롯되는 느낌들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가 아니라 오직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 다시 말하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쾌락을 제공하는지 — 에 의해서 평가되었다.
No longer able to believe in the Church religion, which had betrayed its own lie, and unable to adopt the true Christian teaching, which denied their entire life, these wealthy and powerful people, being left without any religious understanding of life, returned willy-nilly to that pagan world view which locates the meaning of life in personal pleasure. Thus there occurred among the upper classes what is known as ‘the Renaissance of science and art’, which essentially was not merely the denial of any religion, but also the recognition of its needlessness. 더 이상 자기 자신의 거짓을 배반하는 교회 종교를 믿을 수 없었고, 그들의 전체 삶을 부인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가르침들 채택할 수 없었기에, 이들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삶에 대한 아무런 종교적 깨달음을 상실한 채, 어쩔 수 없이 삶의 의미를 개인적 쾌락에 두는 이교적 세계관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리하여 상류 계급들에서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라고 알려진 것이 발생했으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모든 종교의 부정 뿐만 아니라, 그 불필요함의 인식이었다.
The Church teaching, especially the Roman Catholic, is such a coherent system that it cannot be changed or corrected without destroying the whole. As soon as there emerged a doubt of the infallibility of the popes [45] — and this doubt emerged then in all educated people — there inevitably emerged a doubt of the truth of Catholic tradition. And doubt of the truth of the Catholic tradition demolished not only the papacy and Catholicism, but the entire faith of the Church, with all its dogmas, the divinity of Christ, the Resurrection, the Trinity; it also destroyed the authority of the Scriptures, because the Scriptures were recognized as sacred only because tradition had decided so. 교회의 가르침은, 특히 로마 가톨릭은, 너무나 밀착된 체계라서 전체를 파괴함이 없이는 변화될 수도 교정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교황들의 무오류성에 대한 의문이 나타나자 마자 — 그리고 이 같은 의혹은 모든 교육받은 사람들 안에서 나타났다 — 가톨릭 전승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도 필연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톨릭 전승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은 교황권 및 가톨릭교 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의 신앙마저, 그 모든 교리들, 그리스도의 신성, 부활, 삼위일체 등과 함께 붕괴시켰다; 그것은 또한 성서들의 권위를 파괴했다, 왜냐하면 성서들은 오로지 전승이 그렇게 결정했었기 때문에 신성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Thus the majority of upper-class people at that time, even the popes and clerics, essentially did not believe in anything. They did not believe in the Church teaching, because they saw its unsoundness; nor Could they recognize the moral, social teaching of Christ, as it had been recognized by Francis of Assisi, Kelchitsky [46] and most of the sectarians, because this teaching would destroy their social position. So these people remained without any religious world view. And, having no religious world view, they could not have any other standard for evaluating good and bad art than personal pleasure. Having recognized pleasure — that is, beauty — as the standard of what is good, people of the upper classes of European society returned in their understanding of art to the crude understanding of the primitive Greeks, already condemned by Plato. And, in correspondence with this understanding, a theory of art took shape among them. 이렇게 해서 그 시대의 대다수 상류 계급의 사람들은, 심지어 교황들 및 성직자들마저,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의 타락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프란시스 아시시, 켈치스키에 의해 인식되던 것 같은, 그리스도의 도덕적 사회적 가르침도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아무런 종교적 세계관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런 종교적 세계관을 지니지 않게 되자, 그들은 개인적 쾌락 외에 선하고 악한 예술을 평가할 다른 어떤 기준도 가질 수 없었다. 쾌락 — 즉, 아름다움 — 을 선의 표준으로 인정하고 나자, 유럽 사회의 상류 계급의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있어서 원시적인 그리스인들의 유치한 이해로 돌아갔으며, 이것은 이미 플라톤이 비난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해에 맞추어서, 예술 이론이 그들 사이에서 모습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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