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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인가?

by Leo Tolstoy


What Is Art?

예술은 무엇인가?



What then is art, if we discard the all-confusing concept of beauty? The latest and most comprehensible definitions of art, independent of the concept of beauty, would be the following: art is an activity already emerging in the animal kingdom out of sexuality and a propensity for play (Schiller, Darwin, Spencer), accompanied by a pleasant excitation of nervous energy (Grant Alien). This is the physiological-evolutionary definition. Or, art is an external manifestation, by means of lines, colours, gestures, sounds, or words, of emotions experienced by man (Véron). This is the practical definition. Or, according to Sully’s most recent definition, art is the production of some permanent object or passing action, which is fitted not only to supply an active enjoyment to the producer, but to convey a pleasurable impression to a number of spectators or listeners, quite apart from any personal advantage to be derived from it’. [40]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혼란스런 개념을 버리고 나면, 그러면 무엇이  예술인가? 가장 최근의 가장 설득력 있는 예술의 정의들은, 아름다움의 개념을 제외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예술은 동물의 왕국에서 성 능력 및 놀이 성향으로부터 이미 나타난 활동으로 (쉴러, 다윈, 스펜서), 활력 있는 힘의 유쾌한 자극을 동반한다 (그랜트 에일리언). 이것은 생리-진화적 정의이다. 또는, 예술은 선들, 색상들, 흉내들, 소리들, 또는 단어들로서, 사람에 의해 경험되는 감정들의 외적인 표현이다 (베론). 이것은 실용적 정의이다. 또는, 술리의 가장 최근의 정의에 의하면, 예술은 어떤 영구적 물체 또는 스쳐가는 행위의 연출로서, 이 행위는 연출자에게 적극적인 즐거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람자 또는 청중들에게 유쾌한 인상을 전달해주며,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떤 개인적 이익과는 전혀 별개이다.
In spite of the superiority of these definitions over metaphysical definitions based on the concept of beauty, they are still far from precise. The first, physiological-evolutionary definition is imprecise because it speaks not of the activity that constitutes the essence of art, but of the origin of art. The definition by physiological impact upon man’s organism is imprecise because many other activities of man can fit into it as well, as occurs in the new aesthetic theories which reckon as art the making of beautiful clothing and pleasant perfumes and even foods. The practical definition which supposes art to be the expression of emotions is imprecise because a man may express his emotions by means of lines, colours, sounds and words without affecting others by it, and the expression will then not be art. 아름다움의 개념을 토대로 하는 형이상학적 정의들에 대한 이들 정의들의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이들도 여전히 전혀 정확하지 않다. 첫째, 생리-진화적 정의는 부정확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의 본질을 구성하는 행위가 아니라 예술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관에 대한 생리학적인 영향의 정의는 부정확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다른 많은 행위들도 그 안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러함은 아름다운 옷 및 상쾌한 향수들 및 심지어 음식들을 만드는 것도 예술로 여기는 새로운 미학적 이론들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감정들을 표현함이라고 여기는 실용적 정의는 부정확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감정들을 선들, 색상들, 소리들 및 말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며, 그렇다면 그 표현들은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The third definition, by Sully, is imprecise because under the production of objects that afford pleasure to the producer and a pleasant impression to the spectators or listeners, apart from any advantage to them, may be included the performance of magic tricks, gymnastic exercises and other activities which are not art, and, on the other hand, many objects that produce an unpleasant impression, as, for instance, a gloomy, cruel scene in a poetic description or in the theatre, are unquestionably works of art. 술리에 의한 세 번째의 정의는 부정확하다 왜냐하면 연출자에게 즐거움을 그리고 관람자들 또는 청중들에게, 그들에 대한 어떤 이익과는 별도로, 즐거운 인상을 주는 물체들을 연출함에는 예술이 아닌 마술 묘기의 시연들, 체조 운동들 및 기타 활동들이 포함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불쾌한 인상을 주는, 예를 들면, 시적 묘사에서 또는 극장에서, 침울하고, 잔인한 장면을 연출하는 물체들도 의문의 여지 없이 예술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The imprecision of all these definitions proceeds from the fact that in all of them, just as in the metaphysical definitions, the aim of art is located in the pleasure we derive from it, and not in its purpose in the life of man and of mankind. 이 모든 정의들의 부정확함은 그들 모두에서, 형이상학적 정의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목적이 그로부터 우리가 이끌어 내는 쾌락에 있으며, 사람의 그리고 인류의 삶 안에서 예술의 목적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In order to define art precisely, one must first of all cease looking at it as a means of pleasure and consider it as one of the conditions of human life. Considering art in this way, we cannot fail to see that art is a means of communion among people. 예술을 정확히 정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술을 쾌락의 수단으로 보는 것을 중지하고 인간의 삶의 조건들 중의 하나로 여겨야만 한다. 예술을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술이 사람들 사이의 교제의 수단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Every work of art results in the one who receives it entering into a certain kind of communion with the one who produced or is producing the art, and with all those who, simultaneously with him, before him, or after him, have received or will receive the same artistic impression. 모든 예술 작품은 그것을 받아 들이는 사람이 예술을 만들어 내거나 내고 있는 사람이, 그리고 동시에 그와 함께, 그의 앞에, 혹은 그의 뒤에서, 동일한 예술적 인상을 받았거나 받을 모든 사람들이, 특정한 종류의 교제에 들어감으로 귀결된다.
As the word which conveys men’s thoughts and experiences serves to unite people, so art serves in exactly the same way. The peculiarity of this means of communion, which distinguishes it from communion by means of the word, is that through the word a man conveys his thoughts to another, while through art people convey their feelings to each other. 사람들의 생각들 및 경험들을 전달하는 말이 사람들을 연합하듯이, 예술도 정확히 똑같이 작용한다. 이 같은 교제 수단의 특징은, 말을 이용한 교제와 구별되는 것으로, 말을 통하여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반면에 예술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느낌들을 서로에게 전달한다.
The activity of art is based on the fact that man, as he receives through hearing or sight the expressions of another man’s feelings, is capable of experiencing the same feelings as the man who expresses them. 예술 활동은 사람이, 듣기나 보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느낌들에 대한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것들을 표현하는 사람과 동일한 느낌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The simplest example: a man laughs, and another man feels merry; he weeps, and the man who hears this weeping feels sad; a man is excited, annoyed, and another looking at him gets into the same state. With his movements, the sounds of his voice, a man displays cheerfulness, determination, or, on the contrary, dejection, calm — and this mood is communicated to others. A man suffers, expressing his suffering in moans and convulsions — and this suffering is communicated to others; a man displays his feeling of admiration, awe, fear, respect for certain objects, persons, phenomena — and other people become infected, experience the same feelings of admiration, awe, fear, respect for the same objects, persons or phenomena. 가장 단순한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웃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즐거움을 느낀다; 그가 운다, 그리고 이 울음을 듣는 사람은 슬픔을 느낀다; 한 사람이 흥분하고 화를 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그들 바라보고서 동일한 상태에 접어든다. 자신의 움직임들, 자신의 목소리들을 가지고, 사람은 쾌활함, 결심을, 혹은, 정반대로, 낙담, 고요함을 드러낸다 — 그리고 이런 기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겪는다, 신음소리와 경련으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다 — 그리고 이런 고통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물체들, 사람들, 현상들에 찬미, 경외, 공포, 존경의 감정을 나타낸다 —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전염되어서, 동일한 물체들, 사람들, 혹은 현상들에, 동일한 찬미, 경외, 공포, 존경의 느낌들을 경험한다.
On this capacity of people to be infected by the feelings of other people, the activity of art is based. 다른 사람들의 감정들에 의해서 전염될 수 있는 이 같은 능력 위에, 예술 활동이 바탕을 두는 것이다.
If a man infects another or others directly by his look or by the sounds he produces at the moment he experiences a feeling, if he makes someone yawn when he himself feels like yawning, or laugh, or cry, when he himself laughs or cries over something, or suffer when he himself suffers, this is not yet art. 만일 한 사람이 그가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에 만들어 내는 자신의 외모 혹은 소리들에 의해 상대방 혹은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킨다면, 자신이 하품하고 싶을 때 누군가를 하품하게 하거나, 혹은 그 자신이 어떤 것을 보고 웃고 울 때 웃고 울게 하거나, 혹은 자신이 고통 받을 때 고통 받게 한다면, 이것은 아직 예술이 아니다.
Art begins when a man, with the purpose of communicating to other people a feeling he once experienced, calls it up again within himself and expresses it by certain external signs. 예술은 한 사람이, 그가 예전에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그것을 자신 안에 다시 불러 내어 어떤 외적인 신호들로 그것을 표현할 때 시작된다.
Thus, the simplest case: a boy who once experienced fear, let us say, on encountering a wolf, tells about this encounter and, to call up in others the feeling he experienced, describes himself, his state of mind before the encounter, the surroundings, the forest, his carelessness, and then the look of the wolf, its movements, the distance between the wolf and himself, and so on. All this — if as he tells the story the boy relives the feeling he experienced, infects his listeners, makes them relive all that the narrator lived through — is art. Even if the boy had not seen a wolf, but had often been afraid of seeing one, and, wishing to call up in others the feeling he experienced, invented the encounter with the wolf, telling it in such a way that through his narrative he called up in his listeners the same feeling he experienced in imagining the wolf — this, too, is art. In just the same way, it is art if a man, having experienced in reality or in imagination the horror of suffering or the delight of pleasure, expresses these feelings on canvas or in marble in such a way that others are infected by them. And in just the same way, it will be art if a man has experienced or imagined the feelings of merriment, joy, sadness, despair, cheerfulness, dejection, and the transitions between these feelings, and expresses them in sounds so that listeners are infected by them and experience them in the same way as he has, experienced them.


그리하여, 가장 단순한 경우: 이전에, 이를테면, 늑대와 조우한 두려움을 경험한 한 소년이 이런 조우에 대하 말하며, 그가 경험한 느낌을 다른 사람들 안에서 불러오기 위해, 자신, 조우 이전의 정신상태, 주변 상황들, 숲, 자신의 부주의함, 그리고 나서 늑대의 모습, 동작들, 늑대와 자신과의 거리,등을 묘사한다. 이 모든 것은 — 만일 소년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경험한 느낌을 되살리며, 그의 청중들에게 전염시키며, 화자가 겪었던 모든 것을 그들로 하여금 체험하도록 만든다면 — 예술이다. 심지어 그 소년이 늑대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늑대 보는 것을 두려워 했으며, 그가 경험한 느낌을 다른 사람들 안에 불러 일으키기를 바라면서, 늑대와의 조우를 꾸며내고, 그것들을 말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청중들 안에 그가 늑대를 상상하며 경험한 동일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면 — 이것 역시 예술이다. 바로 똑같은 방법으로, 만일 어떤 사람이, 현실이나 상상에서 고통의 전율 혹은 쾌락의 기쁨을 경험하고서, 이런 느낌들을 화폭이나 대리석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들로 전염될 수 있도록 표현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그리고 정확히 동일한 방법으로, 한 사람이 환희, 기쁨, 슬픔, 절망, 유쾌함, 낙담, 그리고 이런 감정들 사이의 전이들을 경험했거나 상상했으며, 그것들을 소리로 표현하여 청중들이 그것들에 전염되고 그가 그것들을 경험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경험한다면, 그것은 예술일 것이다.
Feelings, the most diverse, very strong and very weak, very significant and very worthless, very bad and very good, if only they infect the reader, the spectator, the listener, constitute the subject of art. The feeling of self-denial and submission to fate or God portrayed in a drama; the raptures of lovers described in a novel; a feeling of sensuousness depicted in a painting; the briskness conveyed by a triumphal march in music; the gaiety evoked by a dance; the comicality caused by a funny anecdote; the feeling of peace conveyed by an evening landscape or a lulling song — all this is art. 느낌들은, 가장 다양한, 매우 강하고 매우 약하며, 매우 중요하고 매우 무가치하며, 매우 나쁘고 매우 유익하든, 오직 그것들이 독자, 관람자, 청중을 전염시킨다면, 예술의 주제를 구성한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운명 혹은 신 앞에서의 자기 부정 및 복종의 느낌; 소설에서 묘사된 연인들의 환희들; 승리의 행진 음악에 의해 전달된 활기참; 춤으로 유발되는 명랑함; 재미있는 일화로 야기되는 익살스러움; 저녁 풍경 혹은 자장가에 의해 전달되는 평화스런 느낌 — 이 모든 것은 예술이다
Once the spectators or listeners are infected by the same feeling the author has experienced, this is art. 구경꾼들이나 청중들이 작가가 경험한 것과 똑같은 느낌에 의해 전염되면, 이것은 예술이다.
To call up in oneself a feeling once experienced and, having called it up, to convey it by means of movements, lines, colors, sounds, images expressed in words, so that others experience the same feeling — in this consists the activity of art. Art is that human activity which consists in one man’s consciously conveying to others, by certain external signs, the feelings he has experienced, and in others being infected by those feelings and also experiencing them. 이전에 경험한 느낌을 자신의 내부에 불러 일으키는 것, 그것을 불러 낸 다음, 동작들, 선들, 색상들, 소리들 단어들로 표현된 영상들로 그것을 전달하는 것,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 — 바로 여기에 예술 활동이 존재한다. 예술은 한 사람이, 어떤 외적인 표시들로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 전달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느낌들에 전염되는 것과 또한 그것들을 경험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인간 활동이다.
Art is not, as the metaphysicians say, the manifestation of some mysterious idea, beauty, God; not, as the aesthetician-physiologists say, a form of play in which man releases a surplus of stored-up energy; not the manifestation of emotions through external signs; not the production of pleasing objects; not, above all, pleasure; but is a means of human communion, necessary for life and for the movement towards the good of the individual man and of mankind, uniting them in the same feelings. 예술은, 형이상학자들이 말하듯, 어떤 신비한 개념, 아름다움, 신의 표현이 아니다; 미학적-생리학자들이 말하듯, 저장된 잉여의 힘을 방출하는 놀이의 형태가 아니다; 외적인 표시들을 통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즐거운 물체들을 생산함이 아니다; 무엇보다 쾌락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교제의 수단이며, 삶을 위하여 그리고 한 개인의 및 인류의 선을 향한 움직임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이로써 그들을 동일한 느낌들로 연합해 준다.
Just as, owing to man’s capacity for understanding thoughts expressed in words, any man can learn all that mankind has done for him in the realm of thought, can in the present, owing to the capacity for understanding other people’s thoughts, participate in other people’s activity, and can himself, owing to this capacity, convey the thoughts he has received from others, and his own as they have emerged in him, to his contemporaries and to posterity; so, owing to man’s capacity for being infected by other people’s feelings through art, he has access to all that mankind has experienced before him in the realm of feeling, he has access to the feelings experienced by his contemporaries, to feelings lived by other men thousands of years ago, and it is possible for him to convey his feelings to other people. 말들로 표현된 사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사상의 영역에서 인류가 그에게 주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으며, 현재에도, 다른 사람들의 사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런 능력에 따라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사상들 및 자신의 안에 나타난 대로의 자기 자신의 것을 그의 동시대인들 및 후손들에게 스스로 전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느낌들에 의해 전염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는 느낌의 영역에서 모든 인류가 그의 이전에 경험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으며, 그의 동시대인들이 경험한 느낌들을, 수천 년 전 다른 사람들이 살아 왔던 느낌들을 접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가  그의 느낌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If people were incapable of receiving all the thoughts conveyed in words by people living before them, or of conveying their own thoughts to others, they would be like beasts or like Kaspar Hauser. [41] 만일 사람들이 그들 앞에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말들로 전달된 모든 사상들을 받아 들일, 혹은 그들 자신의 사상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능력이 없다면, 그들은 짐승들 같거나 혹은 카스파 하우저 같을 것이다.
If men were not possessed of this other capacity — that of being infected by art — people would perhaps be still more savage and, above all, more divided and hostile. 만일 사람들이 이런 다른 능력 — 즉 예술에 의해 전염되는 능력 — 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훨씬 더 야만적이며, 무엇보다 더 분열적이고 적대적일 것이다.
And therefore the activity of art is a very important activity, as important as the activity of speech, and as widely spread. 그리고 그러므로 예술 활동은 매우 중요한 활동이며, 언어 활동만큼이나 중요하며 널리 퍼져 있다.
As the word affects us not only in sermons, orations and books, but in all those speeches in which we convey our thoughts and experiences to each other, so, too, art in the broad sense of the word pervades our entire life, while, in the narrow sense of the word, we call art only certain of its manifestations. 마치 말이 설교들, 연설들, 및 책들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사상들 및 경험들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그 모든 대화들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넓은 의미에서 예술 역시 우리의 전체 삶에 스며들며, 반면에 좁은 의미에서, 우리는 예술을 오직 그런 일부 표현들 만을 예술이라 부른다.
We are accustomed to regard as art only what we read, hear, see in theatres, concerts and exhibitions, buildings, statues, poems, novels . . . But all this is only a small portion of the art by which we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in life. The whole of human life is filled with works of art of various kinds, from lullabies, jokes, mimicry, home decoration, clothing, utensils, to church services and solemn processions. All this is the activity of art. Thus we call art, in the narrow sense of the word, not the entire human activity that conveys feelings, but only that which we for some reason single out from all this activity and to which we give special significance. 우리는 오로지 극장들, 연주회들 및 전시회들, 건물들, 형상들, 시들, 소설들에서 읽고 듣고 보는 것만을 예술로 여기는데 익숙해져 있다. .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삶 안에서 서로 대화하기 위한 단지 예술의 조그만 일부일 뿐이다. 전체 인간의 삶은, 자장가들, 농담들, 흉내들, 실내 장식, 의상, 실용품들로부터 교회 예배들 및 종교 행렬까지, 다양한 종류의 예술 작품들로 채워진다. 이 모든 것은 예술 활동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술이, 좁은 의미로, 느낌들을 전달하는 전체 인간 활동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이유로 이 모든 활동으로부터 골라낸 것 그리고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This special significance has always been given by all people to the part of this activity which conveys feelings coming from their religious consciousness, and it is this small part of the whole of art that has been called art in the full sense of the word. 이 특별한 의미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종교적 인식에서 비롯된 느낌들을 전달하는 이런 활동의 일부에 주어졌으며, 전체 예술의 이 같은 일부가 완전한 의미로서 예술로 불려 온 것이다.
This was the view of art among the men of antiquity — Socrates, Plato, Aristotle. The same view of art was shared by the Hebrew prophets and the early Christians; it is understood in the same way by the Muslims and by religious men of the people in our time. 이것은 고대의 사람들 —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사이에 있던 예술에 관한 시각이었다. 예술에 대한 동일한 시각은 히브리의 선지자들 및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 공유되었다; 그것은 동일한 방법으로 회교도들에 의해 그리고 우리 시대의 민중의 종교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었다.
Some teachers of mankind, such as Plato in his Republic, the first Christians, strict Muslims, and Buddhists, have often even rejected all art. 인류의 어떤 교사들은, 예를 들면, 공화국에서 플라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 엄격한 회교도들, 및 불교인들은, 종종 심지어는 모든 예술을 거부했다.
People holding this view of art, contrary to the modern view which considers all art good as long as it affords pleasure, thought and think that art, unlike the word, to which one need not listen, is so highly dangerous in its capacity for infecting people against their will, that mankind would lose far less if all art were banished than if every kind of art were tolerated. 예술에 대한 이런 시각을 지닌 사람들은, 쾌락을 제공하는 한 모든 예술이 유익하다고 여기는 현대의 시각과 반대하며, 예술은, 말과 달라서, 청취할 필요가 없어서, 사람들의 의지에 반하여 그들을 전염시킬 수 있는 예술의 능력이란 점에서 매우 위험해서, 모든 종류의 예술을 허용하는 것보다 모든 예술이 추방되는 것이, 인류가 훨씬 덜 잃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생각한다.
Those people who rejected all art were obviously wrong, because they rejected what cannot be rejected — one of the most necessary means of communication, without which mankind cannot live. But no less wrong are the people of our civilized European society, circle and time, in tolerating all art as long as it serves beauty — that is, gives people pleasure. 모든 예술을 거부한 사람들은 명백히 오류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부될 수 없는 것 — 교제에 가장 필요한 수단의 하나로서, 그것이 없다면 인류가 살 수 없는 것 — 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명화된 유럽 사회, 범주 및 시대의 민중은, 예술이 아름다움에 도움이 된다면 — 즉, 사람들에게 쾌락을 준다면 —  모든 예술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결코 덜한 오류가 아니다.
Formerly, there was fear that among objects of art some corrupting objects might be found, and so all art was forbidden. Now, there is only fear lest they be deprived of some pleasure afforded by art, and so all art is patronized. And I think that the second error is much greater than the first and that its consequences are much more harmful. 예전에는, 예술의 요소들 중에 일부 타락적인 요소들이 나타날 것 같은 우려가 있었으며, 그래서 모든 예술이 금지되었다. 지금은, 예술이 제공하는 일부 쾌락이 박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만이 존재하며, 그래서 모든 예술은 장려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후자의 오류가 전자보다 훨씬 크며, 그 결과들은 훨씬 더 해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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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