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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ETTER TO A HINDU

THE SUBJECTION OF INDIA - ITS CAUSE AND CURE

인도인에게 보내는 편지

인도의 종속 - 그 원인과 치유


With an Introduction by M. K. GANDHI

마하트마 카람챤드 간디의 서문

   

INTRODUCTION

A LETTER TO A HINDU

I  II  III  IV  V  VI  VII

서문

인도인에게 보내는 편지

I  II  III  IV  V  VI  VII

 

   

INTRODUCTION

서문

The letter printed below is a translation of Tolstoy's letter written in Russian in reply to one from the Editor of Free Hindustan. After having passed from hand to hand, this letter at last came into my possession through a friend who asked me, as one much interested in Tolstoy's writings, whether I thought it worth publishing. I at once replied in the affirmative, and told him I should translate it myself into Gujarati and induce others' to translate and publish it in various Indian vernaculars. 아래에 기록된 서한은 [자유 인도인]의 편집자로부터 온 서한에 대한 답장으로 러시아에서 쓰여진 톨스토이의 서한의 번역이다. 여러 손을 거친 다음에, 이 서한은, 톨스토이의 작품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연유로 그것이 출판할 가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지 내게 물은 어떤 친구를 통하여 마침내 나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나는 당장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으며, 나는 그에게 그것을 나 자신이 Gujarati어로 번역할 것과 다른 사람들이 인도의 여러 방언들로 번역하고 출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The letter as received by me was a type-written copy. It was therefore referred to the author, who confirmed it as his and kindly granted me permission to print it. 나에게 입수된 대로의 서한은 타자로 작성된 사본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작가에게 조회하였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것이며 내가 그것을 인쇄할 것을 친절하게 허락하였다.
To me, as a humble follower of that great teacher whom I have long looked upon as one of my guides, it is a matter of honour to be connected with the publication of his letter, such especially as the one which is now being given to the world. 나에게는, 내가 오랫동안 나의 지표의 한 사람으로 여겨왔던 그토록 훌륭한 선생의 겸손한 신봉자로서, 특별히 이제 세상으로 나타나려는 것과 같은 이 서한의 발행에 연관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다. 
It is a mere statement of fact to say that every Indian, whether he owns up to it or not, has national aspirations. But there are as many opinions as there are Indian nationalists as to the exact meaning of that aspiration, and more especially as to the methods to be used to attain the end. 제각기 인도인은, 인정하든 아니하든, 국가적인 소망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단순한 선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망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특히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방법들에 대해서, 인도의 국가주의자들 수 만큼이나 많은 의견들이 존재한다.  
One of the accepted and 'time-honoured' methods to attain the end is that of violence. The assassination of Sir Curzon Wylie was an illustration of that method in its worst and most detestable form. Tolstoy's life has been devoted to replacing the method of violence for removing tyranny or securing reform by the method of non-resistance to evil. He would meet hatred expressed in violence by love expressed in self-suffering. He admits of no exception to whittle down this great and divine law of love. He applies it to all the problems that trouble mankind.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용되어 왔으며 전통적인 방법들 중의 하나는 폭력적인 방법이다. Curzon Wylie경의 암살은 가장 극악하며 가장 혐오스런 형태로서 그와 같은 방법의 한 예시이다. 톨스토이의 삶은 압제자를 제거하거나 개혁을 확보하기 위한 폭력의 방법 대신 악에 대한 무저항의 방법으로 대체함에 헌신하여 왔다. 그는 폭력에 표현되는 증오를 자기 고통에서 표현되는 사랑으로 대처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처럼 위대하며 신적인 사랑의 율법을 깎아 내릴 수 있는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인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에 그것을 적용한다.
When a man like Tolstoy, one of the clearest thinkers in the western world, one of the greatest writers, one who as a soldier has known what violence is and what it can do, condemns Japan for having blindly followed the law of modern science, falsely so-called, and fears for that country 'the greatest calamities', it is for us to pause and consider whether, in our impatience of English rule, we do not want to replace one evil by another and a worse. India, which is the nursery of the great faiths of the world, will cease to be nationalist India, whatever else she may become, when she goes through the process of civilization in the shape of reproduction on that sacred soil of gun factories and the hateful industrialism which has reduced the people of Europe to a state of slavery, and all but stifled among them the best instincts which are the heritage of the human family. 서구 세계에서 가장 명료한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톨스토이 같은 사람이, 병사이던 시절에 폭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았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이 위선적으로 현대 과학의 율법을 맹목적으로 추종함을, 그리고 그 국가에 대한 두려움들을 '가장 큰 재앙들'로 정죄할 때에, 우리는 영국 통치에 대한 성급함에서, 기존의 악을 다른 그리고 더한 악으로 대체하기를 원하고 있지나 않는지를 멈추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위대한 신앙들의 산실로서 인도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신성한 흙 위에 무기 공장들 및 유럽의 사람들을 노예의 상태로 전락시킨 증오스런 산업주의의 재생산의 모습 안에서 문명화의 과정을 겪고 있으며, 인간 가족의 유산인 가장 선한 본능들이 그것들 안에서 거의 질식되어 갈 때에도, 국가주의적 인도이기를 멈출 것이다.
If we do not want the English in India we must pay the price. Tolstoy indicates it. 'Do not resist evil, but also do not yourselves participate in evil - in the violent deeds of the administration of the law courts, the collection of taxes and, what is more important, of the soldiers, and no one in the world will enslave you', passionately declares the sage of Yasnaya Polyana. Who can question the truth of what he says in the following: 'A commercial company enslaved a nation comprising two hundred millions. Tell this to a man free from superstition and he will fail to grasp what these words mean. What does it mean that thirty thousand people, not athletes, but rather weak and ordinary people, have enslaved two hundred millions of vigorous, clever, capable, freedom-loving people? Do not the figures make it clear that not the English, but the Indians, have enslaved themselves ?' 만일 우리가 인도 안에서 영국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톨스토이는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악에 저항하지 말라, 또한 당신 자신들도 악 - 법정들의 행정이라는 폭력적인 행위들, 세금의 징수,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징집 - 에 참여하지 말라, 그러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을 노예화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야스나야 폴리야나의 현자는 열정적으로 선포한다. 다음에서 그가 말하는 것의 진리를 누가 의문시할 수 있겠는가?: '한 상업 회사가 2억의 인구를 포함하는 국가를 노예화하였다. 이것을 미신에서 자유로운 한 사람에게 말해보라 그러면 그는 이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3 만 명의 사람들, 운동선수들도 아니고 오히려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원기왕성하고, 영리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수치는 영국인이 아니라, 인도인들 스스로 노예가 되었음이 명백하지 않는가?'  
One need not accept all that Tolstoy says-some of his facts are not accurately stated-to realize the central truth of his indictment of the present system, which is to understand and act upon the irresistible power of the soul over the body, of love, which is an attribute of the soul, over the brute or body force generated by the stirring in us of evil passions. 우리는 현재의 체제에 대한 톨스토이의 비난의 중심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 그가 말하는 - 그의 사실들 중 일부는 정확히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 모두를 수용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그의 말은 육신에 대한 영혼의, 우리 안의 악한 열정들의 꿈틀거림에 생겨난 수성(獸性) 또는 육신에 대한, 영혼의 특징인 사랑의, 저항할 수 없는 힘을 깨닫고 그에 따라 행할 것을 요구한다. 
There is no doubt that there is nothing new in what Tolstoy preaches. But his presentation of the old truth is refreshingly forceful. His logic is unassailable. And above all he endeavours to practise what he preaches. He preaches to convince. He is sincere and in earnest. He commands attention. 톨스토이가 설교하는 것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은 의심이 없다. 그러나 오래된 진리에 대한 그의 표명은 괄목할 정도로 힘이 있다. 그의 논리는 공격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설교하는 것을 실천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는 납득이 가도록 설교하고 있다. 그는 진실하며 진지하다. 그는 주의를 끌게 한다.
   
[19th November, 1909.] M. K. GANDHI [1909 년 11 월 19 일] 마하트마 카람찬드 간디.
   

A LETTER TO A HINDU

한 인도인에게 보내는 편지.


By LEO TOLSTOY

   
All that exists is One. People only call this One by different names.    THE VEDAS.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일하다. 사람들은 오직 이 유일함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 THE VEDAS..
God is love, and he that abideth in love abideth in God, and God abideth in him.   I JOHN iv. 16.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에 머무르는 자는 하나님 안에 머무르며 하나님이 그 안에 머무른다. - 요한복음 4:16
God is one whole; we are the parts.    EXPOSITION OF THE TEACHING OF THE VEDAS BY VIVEKANANDA. 하나님은 하나의 전체이며; 우리는 부분들이다. - 비베카나다의 베다 가르침에 대한 해석
   

I

I

Do not seek quiet and rest in those earthly realms where delusions and desires are engendered, for if thou dost, thou wilt be dragged through the rough wilderness of life, which is far from Me. Whenever thou feelest that thy feet are becoming entangled in the interlaced roots of life, know that thou has strayed from the path to which I beckon thee: for I have placed thee in broad, smooth paths, which are strewn with flowers. I have put a light before thee, which thou canst follow and thus run without stumbling. KRISHNA. 망상들과 욕망들이 생겨나는 그런 현세의 왕국들에서 고요와 휴식을 추구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가 그렇게 행한다면, 너희는 삶의 거친 황야로 끌려갈 것이며, 그것은 나에게서 멀리 있게 된다. 너희의 발들이 삶의 짜여진 뿌리들 안에 엉켜 들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내가 너희에게 가리켜준 길에서 벗어났음을 알도록 하라: 나는 너희를 넓고, 부드러운 길들 위에 두었으며, 그 길들은 꽃들로 뿌려져 있기 때문이라. 나는 너희 앞에 등불을 두었으니, 너희가 넘어지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며 달릴 수 있도다. KRISHNA.
   
I have received your letter and two numbers of your periodical, both of which interest me extremely. The oppression of a majority by a minority, and the demoralization inevitably resulting from it, is a phenomenon that has always occupied me and has done so most particularly of late. I will try to explain to you what I think about that subject in general, and particularly about the cause from which the dreadful evils of which you write in your letter, and in the Hindu periodical you have sent me, have arisen and continue to arise. 나는 당신의 편지와 당신의 2호에 걸친 잡지들을 받았으며, 모두 나에게 지극히 흥미를 주었습니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억압 및 필연적으로 그로부터 초래되는 도덕적 타락은, 언제나 나를 사로잡아 왔으며 특히 가장 최근까지 그러했던 한가지 현상입니다. 나는 그 주제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별히 당신의 편지에 당신이 기록한, 그리고 당신이 내게 보내준 인도 잡지에 기록된, 그 무서운 악들이 발생하였으며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는 이유에 관하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당신께 설명하고자 할 것입니다. 
The reason for the astonishing fact that a majority of working people submit to a handful of idlers who control their labour and their very lives is always and everywhere the same-whether the oppressors and oppressed are of one race or whether, as in India and elsewhere, the oppressors are of a different nation. 그들의 노동과 그들의 삶 자체를 통제하는 몇 안 되는 게으름쟁이들에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복종하는 그 놀라운 사실에 대한 이유는 - 압제자들 및 피 압제자들이 한 종족이든지, 아니면, 인도 및 기타에서처럼, 압제자들이 다른 국가에서 왔든 -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This phenomenon seems particularly strange in India, for there more than two hundred million people, highly gifted both physically and mentally, find themselves in the power of a small group of people quite alien to them in thought, and immeasurably inferior to them in religious morality. 이런 현상은 특별히 인도에서는 이상한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공히 신체적 및 정신적으로 탁월한 재능이 있는, 2억이 넘는 사람들이, 사상적으로 그들에게 너무나 이질적인, 그리고 종교적 도덕성에서 그들에 비해 측량할 수 없이 열등한, 일부 사람들의 집단의 권력에 그들 스스로가 속해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From your letter and the articles in Free Hindustan as well as from the very interesting writings of the Hindu Swami Vivekananda and others, it appears that, as is the case in our time with the ills of all nations, the reason lies in the lack of a reasonable religious teaching which by explaining the meaning of life would supply a supreme law for the guidance of conduct and would replace the more than dubious precepts of pseudo-religion and pseudo-science with the immoral conclusions deduced from them and commonly called 'civilization'. 당신의 편지와 [자유 인도인]에 있는 기사들 뿐만 아니라 Hindu Swami Vivekananda 및 다른 사람들의 매우 흥미 있는 작품들로부터, 우리 시대의 모든  국가들의 불행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유는, 삶의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행위의 지침으로서 최고의 법을 제공하는, 그리고  유사 종교의 모호한 가르침들 및 그것들로부터 도출된 그리고 흔히 '문명'이라고 불리는 비도덕적인 결론들을 대체하는,  합리적인 종교적 가르침의 결여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Your letter, as well as the articles in Free Hindustan and Indian political literature generally, shows that most of the leaders of public opinion among your people no longer attach any significance to the religious teachings that were and are professed by the peoples of India, and recognize no possibility of freeing the people from the oppression they endure except by adopting the irreligious and profoundly immoral social arrangements under which the English and other pseudo-Christian nations live to-day. 당신의 편지는, 일반적으로 [자유 인도인] 및 인도의 정치 저술들의 기사들도 마찬가지로, 당신들 국민들 중 대부분의 여론의 선도자들은 인도의 국민들에 의해서 고백되었으며 고백되고 있는 종교적 가르침들에 더 이상 아무런 중요성을 두고 있지 않으며,  오늘날 영국인들 및 기타 유사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살아가고 있는 반종교적이며 심각하게 비도덕적인 사회적 제도들을 채택함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겪는 압제로부터 국민들을 자유롭게 함에 대한 아무런 가능성도 인식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And yet the chief if not the sole cause of the enslavement of the Indian peoples by the English lies in this very absence of a religious consciousness and of the guidance for conduct which should flow from it - a lack common in our day to all nations East and West, from Japan to England and America alike. 그러나 영국인들에 의한 인도의 국민들의 예속화의 유일하지는 않겠지만 주된 원인은 이와 같은 종교적 의식 및 그것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하는 행위의 부재 그 자체이며, 그 결여는 우리의 시대에 동양과 서양의 모든 국가들에,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영국 및 미국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인 것입니다. 
   

II

II

0 ye, who see perplexities over your heads, beneath your feet, and to the right and left of you; you will be an eternal enigma unto yourselves until ye become humble and joyful as children. Then will ye find Me, and having found Me in yourselves, you will rule over worlds, and looking out from the great world within to the little world without, you will bless everything that is, and find all is well with time and with you. KRISHNA. 오 너희는, 너희 머리 위, 너희 발 아래, 그리고 너희 오른쪽과 왼쪽의 혼란들을 보는구나; 너희가 아이들처럼 겸손하고 기뻐질 때까지 너희는 너희 안으로 영원한 수수께끼일 것이다. 그리하면 너희는 나를 볼 것이며, 너희 안에서 나를 찾아내고, 너희는 세상을 다스릴 것이며, 안에 있는 거대한 세상으로부터 바깥에 있는 조그만 세상을 향해 바라 볼 것이며, 너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축복하고, 시간과 함께 그리고 너희와 함께 모든 것이 온전함을 알게 될 것이다. KRISHNA
   
To make my thoughts clear to you I must go farther back. We do not, cannot, and I venture to say need not, know how men lived millions of years ago or even ten thousand years ago, but we do know positively that, as far back as we have any knowledge of mankind, it has always lived in special groups of families, tribes, and nations in which the majority, in the conviction that it must be so, submissively and willingly bowed to the rule of one or more persons-that is to a very small minority. Despite all varieties of circumstances and personalities these relations manifested themselves among the various peoples of whose origin we have any knowledge; and the farther back we go the more absolutely necessary did this arrangement appear, both to the rulers and the ruled, to make it possible for people to live peacefully together. 나의 생각들을 당신에게 분명히 설명하기 위해 나는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수백만 년 전에 또는 심지어 만년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도, 알 수도, 그리고 나는 감히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인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의 과거에도, 언제나 가족들, 종족들, 및 민족들 같은 특정한 집단들이 살아 왔으며, 그들 중에서 다수가,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순종하면서 기꺼이 하나 또는 여러 사람들의 - 다시 말하면, 매우 적은 소수의 - 통치에 굴복했음을 단연코 알고 있습니다. 모든 다양한 상황들 및 성격들에도 불구하고 이들 관계들은 우리가 그 근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욱 과거로 갈 수록 이와 같은 제도들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수 있도록, 통치자들 및 피치자들에게 공히, 더욱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So it was everywhere. But though this external form of life existed for centuries and still exists, very early-thousands of years before our time-amid this life based on coercion, one and the same thought constantly emerged among different nations, namely, that in every individual a spiritual element is manifested that gives life to all that exists, and that this spiritual element strives to unite with everything of a like nature to itself, and attains this aim through love. This thought appeared in most various forms at different times and places, with varying completeness and clarity. It found expression in Brahmanism, Judaism, Mazdaism (the teachings of Zoroaster), in Buddhism, Taoism, Confucianism, and in the writings of the Greek and Roman sages, as well as in Christianity and Mohammedanism. The mere fact that this thought has sprung up among different nations and at different times indicates that it is inherent in human nature and contains the truth. But this truth was made known to people who considered that a community could only be kept together if some of them restrained others, and so it appeared quite irreconcilable with the existing order of society. Moreover it was at first expressed only fragmentarily, and so obscurely that though people admitted its theoretic truth they could not entirely accept it as guidance for their conduct. Then, too, the dissemination of the truth in a society based on coercion was always hindered in one and the same manner, namely, those in power, feeling that the recognition of this truth would undermine their position, consciously or sometimes unconsciously perverted it by explanations and additions quite foreign to it, and also opposed it by open violence. Thus the truth-that his life should be directed by the spiritual element which is its basis, which manifests itself as love, and which is so natural to man-this truth, in order to force a way to man's consciousness, had to struggle not merely against the obscurity with which it was expressed and the intentional and unintentional distortions surrounding it, but also against deliberate violence, which by means of persecutions and punishments sought to compel men to accept religious laws authorized by the rulers and conflicting with the truth. Such a hindrance and misrepresentation of the truth-which had not yet achieved complete clarity-occurred everywhere: in Confucianism and Taoism, in Buddhism and in Christianity, in Mohammedanism and in your Brahmanism. 그러므로 그것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적인 삶의 형태가 수세기 동안 존재하였으며, 여전히 존재하지만, 매우 초기에 - 우리 시대보다 수 천년 전에 - 강압에 기초한 이런 삶의 한 가운데는, 상이한 국가들 사이에서 하나이며 동일한 사상이 끊임없이 부상하였으며, 즉, 이 사상은 제각기 개인 안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주는 영적인 요소가 나타나게 되며, 이 영적인 요소는 유사한 성질을 지닌 각각의 것을 스스로에게 함께 연합하려 애쓴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다른 시대들과 장소들에서 가장 다양한 형태들로 출현하였으며, 다양한 완성도와 명료함을 지녔습니다. 그것에 대한 표현은 브라만교, 유대교, 마즈다교(조로아스터의 가르침들)에서, 불교, 도교, 및 그리스 및 로마의 현자들의 작품들에서는 물론, 그리스도교 및 마호메트교에 발견됩니다. 이런 사상이 상이한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상이한 시대들에서 솟아났다는 사실 사체는 그것이 사람의 본성에 내재된 것이며 진리를 담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런 진리는 한 공동체가 그들 중의 일부가 다른 사람들을 억누른다면 오직 함께 유지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으며, 그래서 그것은 기존의 사회 질서와 상당히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처음에 단편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너무나 희미하여서 비록 사람들이 그것의 이론적 진실을 인정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행위의 지침으로서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도 역시, 강압을 토대로 하는 사회 안에서 진리의 전파는 언제나 하나이자 동일한 방법으로 저지되었으며, 즉,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진리의 인정이 그들의 지위를 잠식할 것이라고 여기면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것과는 매우 이질적인 해석들과 첨가들로 그것을 왜곡하였으며, 또한 공공연한 폭력으로 그것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리하여 진리는 - 자신의 삶이, 진리의 토대이며, 사랑으로 나타나며, 사람에게 너무나 자연적인, 영적인 요소에 의하여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 -, 이 진리는, 사람의 의식을 향한 길을 강제하기 위하여, 그것이 표현되는 불명료함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고의적 및 우발적인 왜곡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폭력, 즉 박해들과 처벌들을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통치자들에 의해서 승인되었으며 진리와 충돌하는 종교적 법률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폭력에 대해서도 대항하여야 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그와 같은 방해와 오전(誤傳)은 - 아직 완전한 명료함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 유교 및 도교에서, 그리고 불교에서 및 그리스도교에서, 마호메트교에서 및 당신의 브라만교에서 발생하였습니다. 
   

III

III

My hand has sowed love everywhere, giving unto all that will receive. Blessings are offered unto all My children, but many times in their blindness they fail to see them. How few there are who gather the gifts which lie in profusion at their feet: how many there are, who, in wilful waywardness, turn their eyes away from them and complain with a wail that they have not that which I have given them; many of them defiantly repudiate not only My gifts, but Me also, Me, the Source of all blessings and the Author of their being. KRISHNA. 나의 손은 모든 곳에 사랑을 심었으며, 받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었노라. 나의 모든 자녀들에게 축복을 내렸으나, 그들의 맹목(盲目)으로 여러 번 그것들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발 아래 널려 있는 선물들을 거두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고집스런 변덕으로, 그들의 눈들을 그것들에서 돌리고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을 갖지 못한다고 슬피 하소연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 중 많은 자들은 나의 선물들 뿐만 아니라, 나, 모든 축복들의 근원이며, 그들 존재의 창조자인 나를 거부하는구나. KRISHNA.
I tarry awhile from the turmoil and strife of the world. I will beautify and quicken thy life with love and with joy, for the light of the soul is Love. Where Love is, there is contentment and peace, and where there is contentment and peace, there am I, also, in their midst. KRISHNA. 나는 세상의 혼란과 다툼에서 잠시 멀리 있노라. 나는 너희 삶을 사랑과 기쁨으로 아름답게 만들고 생기 있게 만들 것이니, 영혼의 빛은 사랑이라. 사랑이 있는 곳에 만족과 평화가 있으며, 만족과 평화가 있는 곳에, 그곳에 내가, 또한, 그들 가운데 있노라. KRISHNA.

The aim of the sinless One consists in acting without causing sorrow to others, although he could attain to great power by ignoring their feelings.

The aim of the sinless One lies in not doing evil unto those who have done evil unto him.

If a man causes suffering even to those who hate him without any reason, he will ultimately have grief not to be overcome.

The punishment of evil doers consists in making them feel ashamed of themselves by doing them a great kindness.

Of what use is superior knowledge in the one, if he does not endeavour to relieve his neighbour's want as much as his own?

If, in the morning, a man wishes to do evil unto another, in the evening the evil will return to him.

THE HINDU KURAL.

죄 없는 자의 목적은 다른 자들에게 슬픔을 일으키지 않고 행함에 있나니, 비록 그가 그들의 감정들을 무시하여 커다란 힘을 얻을 수 있을지라도.
죄 없는 자의 목적은 그에게 악을 행한 자들에게 악을 행하지 않음에 있도다.
만일 사람이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 그를 증오하는 사람에게라도 고통을 준다면, 그는 결국 극복될 수 없는 후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그들에게 커다란 친절을 행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부끄러워 하도록 만듦에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뛰어난 지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만일 그 자신이 소유한 것 만큼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려 애쓰지 않는다면?
만일, 아침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고자 한다면, 저녁이면 그 악이 그에게 돌아 오리라.

THE HINDU KURAL.
   
Thus it went on everywhere. The recognition that love represents the highest morality was nowhere denied or contradicted, but this truth was so interwoven everywhere with all kinds of falsehoods which distorted it, that finally nothing of it remained but words. It was taught that this highest morality was only applicable to private life-for home use, as it were-but that in public life all forms of violence-such as imprisonment, executions, and wars-might be used for the protection of the majority against a minority of evildoers, though such means were diametrically opposed to any vestige of love. And though common sense indicated that if some men claim to decide who is to be subjected to violence of all kinds for the benefit of others, these men to whom violence is applied may, in turn, arrive at a similar conclusion with regard to those who have employed violence to them, and though the great religious teachers of Brahmanism, Buddhism, and above all of Christianity, foreseeing such a perversion of the law of love, have constantly drawn attention to the one invariable condition of love (namely, the enduring of injuries, insults, and violence of all kinds without resisting evil by evil) people continued-regardless of all that leads man forward-to try to unite the incompatibles: the virtue of love, and what is opposed to love, namely, the restraining of evil by violence. And such a teaching, despite its inner contradiction, was so firmly established that the very people who recognize love as a virtue accept as lawful at the same time an order of life based on violence and allowing men not merely to torture but even to kill one another. 이렇게 그것은 모든 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사랑이 지고한 도덕을 나타낸다는 인식은 어느 곳에서도 부인되거나 부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어디에 가나 그것을 왜곡하는 모든 종류의 거짓들과 함께 엮어져서, 마침내 말 밖에는 그에 대한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지고의 도덕은, 오직 사적인 삶 - 이를테면, 집안의 용도 - 에만 적용될 수 있으며, 공중의 삶에서는 모든 형태의 폭력들 - 예를 들면 투옥, 처형들, 및 전쟁들 - 이, 비록 그런 수단들이 어떠한 사랑의 흔적에도 정면으로 대치되더라도, 소수의 행악자들에 대항하여 다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가르쳐졌습니다. 비록 양심이, 만일 어떤 사람들이 누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종류의 폭력에 처해져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을 주장한다면, 폭력이 적용되어지는 이 사람들은 아마도, 돌이켜서, 그들에게 폭력을 사용한 사람들에 관하여 유사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가리켜 주었으며, 비록 브라만교, 불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종교 선생들이, 사랑의 율법에 대한 그와 같은 왜곡을 예견하고서, 사랑의 불변하는 상태 (즉, 고통들, 모욕들 및 모든 종류의 폭력들을 악에 악으로 저항함이 없이 참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주목해 왔음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 사람을 앞으로 이끄는 모든 것들에 관계 없이 - 양립할 수 없는 것들 - 사랑의 미덕, 그리고 사랑에 대치되는 것, 즉 폭력으로서 악을 억압하는 것 - 을 결합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은, 그 내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굳건히 확립되어서 사랑을 미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 조차도, 폭력을 토대로 하는 삶의 질서와 동시에 사람들이 고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서로 죽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합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For a long time people lived in this obvious contradiction without noticing it. But a time arrived when this contradiction became more and more evident to thinkers of various nations. And the old and simple truth that it is natural for men to help and to love one another, but not to torture and to kill one another, became ever clearer, so that fewer and fewer people were able to believe the sophistries by which the distortion of the truth had been made so plausible.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같이 명백한 모순 안에서 그것을 알아차림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순이 다양한 국가들의 사상가들에게 점점 더 분명해지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며,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오래되었지만 단순한, 진리가 이전보다 더욱 명백해 졌으며, 그리하여 진리의 왜곡이 그토록 그럴 듯 했었던 궤변들을 점점 더 적은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In former times the chief method of justifying the use of violence and thereby infringing the law of love was by claiming a divine right for the rulers: the Tsars, Sultans, Rajahs, Shahs, and other heads of states. But the longer humanity lived the weaker grew the belief in this peculiar, God-given right of the ruler. That belief withered in the same way and almost simultaneously in the Christian and the Brahman world, as well as in Buddhist and Confucian spheres, and in recent times it has so faded away as to prevail no longer against man's reasonable understanding and the true religious feeling. People saw more and more clearly, and now the majority see quite clearly, the senselessness and immorality of subordinating their wills to those of other people just like themselves, when they are bidden to do what is contrary not only to their interests but also to their moral sense. And so one might suppose that having lost confidence in any religious authority for a belief in the divinity of potentates of various kinds, people would try to free themselves from subjection to it. But unfortunately not only were the rulers, who were considered supernatural beings, benefited by having the peoples in subjection, but as a result of the belief in, and during the rule of, these pseudodivine beings, ever larger and larger circles of people grouped and established themselves around them, and under an appearance of governing took advantage of the people. And when the old deception of a supernatural and God-appointed authority had dwindled away these men were only concerned to devise a new one which like its predecessor should make it possible to hold the people in bondage to a limited number of rulers. 과거 시절에는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사랑의 율법을 침범하는 최고의 수단은 통치자들에게 신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짜르, 술탄, 라자, 샤, 그리고 기타 국가의 수반들. 그러나 인류가 오래 살아 가면 갈 수록 이런 특이한, 통치자에 대한, 하나님이 내린, 권리에 대한 믿음은 더욱 약해졌습니다. 그런 믿음은 똑같은 식으로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리스도교 및 브라만교 세계에서, 게다가 불교 및 유교 권에서도 시들었으며, 가까운 시대들에도 그것은 너무나 희미해져서 사람의 이성적인 이해와 참된 종교적 정서에 반하여 더 이상 행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들에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덕적 정서에도 반대되는 것을 행하도록 명령 받을 때, 그들의 의지들을 그들 자신들과 유사한 다른 사람들의 의지들에 복종함의 무분별함과 부도덕성을, 점점 더 명백하게 깨달았으며, 이제는 다수가 상당히 명백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권력자들의 신성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어떤 종교적 권위도 신뢰를 상실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종속에서 자유로워 질 것을 시도할 것임을 우리는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초자연적인 존재들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을 복종하게 만듦으로써 혜택을 받던 통치자들 뿐만 아니라, 이들 허위의 신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로서, 그리고 이들에 의한 통치 기간 동안, 그들 주변에 끊임없이 커가는 무리의 사람들이 집단화하여 자리잡았으며, 통치라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초자연적이며 하나님이 임명한 권한에 대한 과거의 기만이 시들어지자 이 사람들은 그들의 전임자들처럼 사람들을 소수의 통치자들에게 예속 상태로 두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오직 새로운 것을 고안함에 몰두하였습니다.
   

IV

IV

Children, do you want to know by what your hearts should be guided? Throw aside your longings and strivings after that which is null and void; get rid of your erroneous thoughts about happiness and wisdom, and your empty and insincere desires. Dispense with these and you will know Love. KRISHNA. 자녀들아, 너희 마음들이 무엇으로 인도되어야 하는지 알기를 바라느냐? 공허한 것들에 대한 너희의 갈망들과 노력들을 던져버려라; 행복과 지혜에 대한 너희의 잘못된 생각들, 그리고 너희의 공허하고 부정한 욕망들을 벗어 던지라. 이것들을 없이하면 너희는 사랑을 알게 되리라. KRISHNA. 
Be not the destroyers of yourselves. Arise to your true Being, and then you will have nothing to fear. KRISHNA.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의 참된 존재로 깨어나라, 그러면 너희는 두려워할 것이 없으리라. KRISHNA. 
   
New justifications have now appeared in place of the antiquated, obsolete, religious ones. These new justifications are just as inadequate as the old ones, but as they are new their futility cannot immediately be recognized by the majority of men. Besides this, those who enjoy power propagate these new sophistries and support them so skilfully that they seem irrefutable even to many of those who suffer from the oppression these theories seek to justify. These new justifications are termed 'scientific'. But by the term 'scientific' is understood just what was formerly understood by the term 'religious': just as formerly everything called 'religious' was held to be unquestionable simply because it was called religious, so now all that is called 'scientific' is held to be unquestionable. In the present case the obsolete religious justification of violence which consisted in the recognition of the supernatural personality of the God-ordained ruler ('there is no power but of God') has been superseded by the 'scientific' justification which puts forward, first, the assertion that because the coercion of man by man has existed in all ages, it follows that such coercion must continue to exist. This assertion that people should continue to live as they have done throughout past ages rather than as their reason and conscience indicate, is what 'science' calls 'the historic law'. A further 'scientific' justification lies in the statement that as among plants and wild beasts there is a constant struggle for existence which always results in the survival of the fittest, a similar struggle should be carried on among human beings-beings, that is, who are gifted with intelligence and love; faculties lacking in the creatures subject to the struggle for existence and survival of the fittest. Such is the second 'scientific' justification. 새로운 정당화들이 이제 고루하고, 쓸모 없는, 종교적인 것들을 대신하여 나타났습니다. 이들 새로운 정당화들은 과거의 것들 만큼이나 모순적이었지만, 그것들은 새것이었으므로, 그들의 무용성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즉시 인식되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은 이들 새로운 궤변들을 전파하고 그것들을 매우 기술적으로 지원하여서 이들 이론들이 정당화하고자 추구하는 억압들로부터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차도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정당성들은 '과학적'이라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과학적'이라는 용어로 이해되는 것은 바로 과거에 '종교적'이라는 용어로 이해되던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단순히 종교적이라고 불리는 이유 때문에 '종교적'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이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것과 똑같이, 이제 '과학적'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현재의 경우에 하나님이 임명한('오직 하나님의 권력만 있을 뿐이다') 통치자의 초자연적 성격의 인식을 구성하던 폭력에 대한 쓸모 없는 종교적 정당화는 '과학적' 정당화로 대체되었으며, 이것은, 먼저, 사람에 의한 사람에 대한 강제는 모든 시대들에서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그러한 강제는 반드시 계속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이라는 주장을 제시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이성 및 양심이 가리키는 것보다는 과거의 시대들을 통하여 행해지던 대로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이런 주장은, '과학'이 일컫는 바, "역사적 법칙"입니다. 진보한 '과학적' 정당화는 식물들과 야생 짐승들 사이에서 언제나 적자 생존을 초래하는 끊임없는 생존 투쟁이 있듯이, 인간 존재들 - 다시 말하자면, 영리함과 사랑을 타고난 존재; 생존 투쟁과 적자 생존에 종속된 사람들에게 결여된 능력들 - 사이에서도 유사한 투쟁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의 '과학적' 정당화입니다.
The third, most important, and unfortunately most widespread justification is, at bottom, the age- old religious one just a little altered: that in public life the suppression of some for the protection of the majority cannot be avoided-so that coercion is unavoidable however desirable reliance on love alone might be in human intercourse. The only difference in this justification by pseudo-science consists in the fact that, to the question why such and such people and not others have the right to decide against whom violence may and must be used, pseudo-science now gives a different reply to that given by religion-which declared that the right to decide was valid because it was pronounced by persons possessed of divine power. 'Science' says that these decisions represent the will of the people, which under a constitutional form of government is supposed to find expression in all the decisions and actions of those who are at the helm at the moment. 세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그리고 불행하게도 가장 만연된 정당화는, 사실, 오직 약간 변형되었으나 오래 묵은 종교적인 것입니다: 즉, 공적인 삶에서 다수의 보호를 위한 일부에 대한 억압은 피할 수 없다 - 그래서 인간의 교제에 있어서 오직 사랑에 의지함이 아무리 바람직하더라도 강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사 과학에 의한 이와 같은 정당화에 있어서의 유일한 차이는, 폭력이 사용될 그리고 반드시 사용되어야 할 사람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은 가지며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하는 가의 질문에 대해서, 유사 과학은 이제 - 결정할 권리는 그것이 신성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선언되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선포하던 - 종교에 의해 주어진 것과는 다른 대답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존재합니다. '과학'은, 이런 결정들이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하며, 그것은 헌법적 형태의 정부 아래서 그 당시 다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결정들과 행위들 안에서 표현을 찾도록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Such are the scientific justifications of the principle of coercion. They are not merely weak but absolutely invalid, yet they are so much needed by those who occupy privileged positions that they believe in them as blindly as they formerly believed in the immaculate conception, and propagate them just as confidently. And the unfortunate majority of men bound to toil is so dazzled by the pomp with which these 'scientific truths' are presented, that under this new influence it accepts these scientific stupidities for holy truth, just as it formerly accepted the pseudo-religious justifications; and it continues to submit to the present holders of power who are just as hard- hearted but rather more numerous than before. 강압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정당화들은 그와 같습니다. 그것들은 근거가 박약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특권적인 지위들을 차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필요하여서 그들이 과거에 순수한 개념을 믿었던 것처럼 맹목적으로 그것들을 믿으며, 똑같이 확신을 가지고 그것들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힘써 일해야만 하는 불행한 다수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과학적 진리들'이 드러내는 위엄에 의해 너무나 아찔한 나머지, 마치 과거게 그들이 유사 종교적 정당화들을 받아 들였던 것과 똑같이, 이런 새로운 영향 아래서 그들은 이와 같은 과학적 어리석은 짓거리들을 성스런 진리로 받아 들이며; 그리고 그들은 이전과 똑같이 무자비하면서 오히려 더욱 많아 진 현재의 권력 보유자들에게 계속해서 복종합니다. 
   

V

V

Who am I? I am that which thou hast searched for since thy baby eyes gazed wonderingly upon the world, whose horizon hides this real life from thee. I am that which in thy heart thou hast prayed for, demanded as thy birthright, although thou hast not known what it was. I am that which has lain in thy soul for hundreds and thousands of years. Sometimes I lay in thee grieving because thou didst not recognize me; sometimes I raised my head, opened my eyes, and extended my arms calling thee either tenderly and quietly, or strenuously, demanding that thou shouldst rebel against the iron chains which bound thee to the earth. KRISHNA. 나는 누구인가? 나를 너희의 아기 눈들이, 지평선이 이런 현재의 삶을 너희에게서 숨기는, 세상을  놀람으로 응시하였던 때부터 너희는 찾았느니라. 비록 너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나를 너희의 마음 안에서 기도함으로, 너희의 출생의 권리로 요구하였던 것이라. 나는 너희의 영혼에 수십 만년 동안 있었느니라. 때로는 나는 너희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므로 너희 안에 슬퍼하며 있었으며; 때로는 나의 머리들 들고, 나의 눈들을 열고, 그리고 나의 팔 들을 벌리며 너희를 부드럽게 그리고 조용히, 또는 격렬하게 불렀으며, 너희를 땅에 묶고 있는 쇠사슬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요구하였노라. KRISHNA.
   
So matters went on, and still go on, in the Christian world. But we might have hope that in the immense Brahman, Buddhist, and Confucian worlds this new scientific superstition would not establish itself, and that the Chinese, Japanese, and Hindus, once their eyes were opened to the religious fraud justifying violence, would advance directly to a recognition of the law of love inherent in humanity, and which had been so forcibly enunciated by the great Eastern teachers. But what has happened is that the scientific superstition replacing the religious one has been accepted and secured a stronger and stronger hold in the East.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교 세상에는 문제들이 계속되었으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활한 브라만, 불교 및 유교 세상들 안에는 이런 새로운 과학적 미신이 자리잡지 않았으면, 그리고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는, 과거에 그들의 눈들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기들에 열려 있었으므로, 인간에 내재된 사랑의 율법의 인식으로, 그리고 그것은 위대한 동양의 교사들에 의하여 그토록 강력하게 주장되어 왔던 터라, 즉시 나아 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발생한 것은 동양에서 종교적인 것을 대체하는 과학적 미신이 수용되었으며 점점 더 튼튼한 발판을 확보한 것이었습니다.
In your periodical you set out as the basic principle which should guide the actions of your people the maxim that: 'Resistance to aggression is not simply justifiable but imperative, nonresistance hurts both Altruism and Egotism.' 당신의 잡지에서 당신의 사람들의 행동들을 인도할 기본적 원리들로서 당신은 행동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침략에 대한 저항은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 의무적이다, 무저항은 이타주의 뿐만 아니라 이기주의도 다치게 한다.'
Love is the only way to rescue humanity from all ills, and in it you too have the only method of saving your people from enslavement. In very ancient times love was proclaimed with special strength and clearness among your people to be the religious basis of human life. Love, and forcible resistance to evil-doers, involve such a mutual contradiction as to destroy utterly the whole sense and meaning of the conception of love. And what follows? With a light heart and in the twentieth century you, an adherent of a religious people, deny their law, feeling convinced of your scientific enlightenment and your right to do so, and you repeat (do not take this amiss) the amazing stupidity indoctrinated in you by the advocates of the use of violence-the enemies of truth, the servants first of theology and then of science-your European teachers. 사랑은 모든 고통들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 역시 예속으로부터 당신의 사람들을 구할 유일한 방법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매우 과거의 시대에 사랑은 당신의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종교적 토대로서 특별한 힘과 명료함을 가지고 선언되었습니다. 사랑, 그리고 행악자들에 대한 폭력적 저항은, 사랑의 개념에 대한 전체 의식과 의미를 완전히 파괴할 정도의 상호적 모순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따라옵니까? 기쁨에 들뜬 마음으로 그리고 20 세기에 당신은, 종교적 사람들의 한 신봉자로서, 당신의 과학적 계몽 및 그와 같이 행할 권리를 느끼면서  그들의 율법을 부인하며, 당신은 폭력의 사용에 대한 옹호자들 - 진리의 적들, 처음은 신학의 그리고 나중엔 과학의 시녀들인, 당신의 유럽인 교사들- 에 의하여 당신 안에 주입된 놀라운 어리석음을 반복합니다.
You say that the English have enslaved your people and hold them in subjection because the latter have not resisted resolutely enough and have not met force by force. 당신은 영국인들이 당신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으며 그들을 복종토록 하였으며, 왜냐하면 후자는 충분히 의연하게 저항하지 않았으며 무력을 무력으로 대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But the case is just the opposite. If the English have enslaved the people of India it is just because the latter recognized, and still recognize, force as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the social order. In accord with that principle they submitted to their little rajahs, and on their behalf struggled against one another, fought the Europeans, the English, and are now trying to fight with them again. 그러나 이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만일 영국이 인도 사람들을 노예화하였다면 그것은 바로 후자가 폭력을 사회적 질서의 근본적인 원리로 인정하였으며, 아직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작은 국왕에게 그들이 복종했던 원리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서로가 투쟁하였고, 유럽인들, 영국인들과 싸웠으며, 이제 다시 그들과 싸우려 하고 있습니다. 
A commercial company enslaved a nation comprising two hundred millions. Tell this to a man free from superstition and he will fail to grasp what these words mean. What does it mean that thirty thousand men, not athletes but rather weak and ordinary people, have subdued two hundred million vigorous, clever, capable, and freedom-loving people? Do not the figures make it clear that it is not the English who have enslaved the Indians, but the Indians who have enslaved themselves? 한 상업 회사가 2 억의 인구를 포함하는 한 국가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떤 사람에게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이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만 명의 사람들, 운동선수들이 아니라 오히려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쾌활하고, 영리하며, 자유를 사랑하는 2 억의 사람들을 진압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수치는 인도인들을 노예로 만든 것은 영국인들이 아니라 인도인들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When the Indians complain that the English have enslaved them it is as if drunkards complained that the spirit-dealers who have settled among them have enslaved them. You tell them that they might give up drinking, but they reply that they are so accustomed to it that they cannot abstain, and that they must have alcohol to keep up their energy. Is it not the same thing with the millions of people who submit to thousands' or even to hundreds, of others-of their own or other nations? 인도 사람들이 영국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음을 불평할 때 그것은 마치 술주정뱅이들이 그들 가운데 정착한 술장사가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음주를 포기해도 좋다고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그것에 너무나 습관이 되어서 끊을 수가 없으며, 그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술을 마셔야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수천 명에게 아니 심지어 수백 명의 다른 - 그들 자신의 또는 다른 국가들의 -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똑같은 것이 아닙니까?
If the people of India are enslaved by violence it is only because they themselves live and have lived by violence, and do not recognize the eternal law of love inherent in humanity. 만일 인도의 사람들이 폭력에 의해서 예속되었다면, 그것은 오직 그들 스스로가 폭력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살아 왔으며, 인간에게 내재된 영원한 사랑의 율법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Pitiful and foolish is the man who seeks what he already has, and does not know that he has it. Yes, Pitiful and foolish is he who does not know the bliss of love which surrounds him and which I have given him. KRISHNA. 자기가 이미 가진 것을 찾으며,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가련하고 어리석다. 그렇다, 그를 둘러싸고 있으며 내가 그에게 준 사랑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가련하고 어리석다. KRISHNA.
   
As soon as men live entirely in accord with the law of love natural to their hearts and now revealed to them, which excludes all resistance by violence, and therefore hold aloof from all participation in violence-as soon as this happens, not only will hundreds be unable to enslave millions, but not even millions will be able to enslave a single individual. Do not resist the evil- doer and take no part in doing so, either in the violent deeds of the administration, in the law courts, the collection of taxes, or above all in soldiering, and no one in the world will be able to enslave you.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들에 고유하며 이제 그들에게 밝혀진 사랑의 율법에, 그것은 폭력에 의한 모든 저항들을 배제하며, 그러므로 폭력에 대한 모든 참여로부터 초연함으로, 온전히 살자마자 - 이것이 일어나자마자, 수백 명이 수백만을 노예로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수백만이 단 한 명의 개인을 노예로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 저항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행함에, 행정부의 폭력적 행위들에, 법정들, 세금들의 징수에, 아니 무엇보다도 병역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을 노예로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VI

VI

0 ye who sit in bondage and continually seek and pant for freedom, seek only for love. Love is peace in itself and peace which gives complete satisfaction. I am the key that opens the portal to the rarely discovered land where contentment alone is found. KRISHNA. 오 너는 속박되어 앉아 있으며 자유를 찾으며 헐떡이는구나, 오직 사랑을 찾으라. 사랑은 그 자체가 평화이며, 평화는 완전한 만족을 주느니라. 나는 오직 만족만이 보이는 거의 발견되지 않은 땅으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이니라. KRISHNA.
   
What is now happening to the people of the East as of the West is like what happens to every individual when he passes from childhood to adolescence and from youth to manhood. He loses what had hitherto guided his life and lives without direction, not having found a new standard suitable to his age, and so he invents all sorts of occupations, cares, distractions, and stupefactions to divert his attention from the misery and senselessness of his life. Such a condition may last a long time. 서양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양의 사람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마치 제각기 개인이 유년에서 사춘기로 그리고 청년에서 성년으로 흘러갈 때에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그의 삶을 인도하였던 것을 잃고서 방향 없이 살며, 그의 나이에 적합한 새로운 표준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그는 삶의 비참함과 무의미함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고자, 모든 종류의 일자리들, 근심들, 오락들, 및 마취들을 꾸며냅니다. 그러한 상황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When an individual passes from one period of life to another a time comes when he cannot go on in senseless activity and excitement as before, but has to understand that although he has outgrown what before used to direct him, this does not mean that he must live without any reasonable guidance, but rather that he must formulate for himself an understanding of life corresponding to his age, and having elucidated it must be guided by it. And in the same way a similar time must come in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humanity. I believe that such a time has now arrived-not in the sense that it has come in the year 1908, but that the inherent contradiction of human life has now reached an extreme degree of tension: on the one side there is the consciousness of the beneficence of the law of love, and on the other the existing order of life which has for centuries occasioned an empty, anxious, restless, and troubled mode of life, conflicting as it does with the law of love and built on the use of violence. This contradiction must be faced, and the solution will evidently not be favorable to the outlived law of violence, but to the truth which has dwelt in the hearts of men from remote antiquity: the truth that the law of love is in accord with the nature of man. 어떤 사람이 삶의 한 시기로부터 다른 시기로 넘어갈 때, 이전처럼 무의미한 행동과 흥분을 계속할 수 없으면서도, 그가 비록 이전에 그를 이끌던 것들이 쓸모 없게 되었지만, 이것이 그가 이제 아무런 합리적인 인도 없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삶에 대한 깨달음을 형성하여야 하며, 그것을 밝힌 다음 반드시 그것에 의해 인도되어야 함을 깨달아야만 하는 때가 옵니다. 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인간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유사한 시기가 반드시 옵니다. 나는 그러한 시기가 이제 도달했다고 믿습니다 - 그것이 1908년에 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내적인 모순이 이제 극도의 긴장의 단계에 도달하였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사랑의 율법의 은혜에 대한 의식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수세기 동안 공허하고, 불안하며, 초조하고, 혼란스러운 삶의 양태를 초래했고, 사랑의 율법과 충돌을 일으켜 왔으며, 폭력의 사용 위에 세워진 기존의 삶의 질서입니다. 이런 모순은 반드시 맞서야 하며, 그 해결은 분명히 쓸모 없게 된 폭력의 법을 향해서가 아니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진리에게 호의적인 것입니다: 그 진리인 즉, 사랑의 율법이 사람의 본성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But men can only recognize this truth to its full extent when they have completely freed themselves from all religious and scientific superstitions and from all the consequent misrepresentations and sophistical distortions by which its recognition has been hindered for centuries.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모든 종교적 및 과학적 미신들로부터 그리고 그에 따른 모든 거짓된 설명들 및 수세기 동안 진리에 대한 인식이 방해 받게 만든 궤변적인 왜곡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질 때에, 이 진리를 한껏 깨달을 수 있습니다.
To save a sinking ship it is necessary to throw overboard the ballast, which though it may once have been needed would now cause the ship to sink. And so it is with the scientific superstition which hides the truth of their welfare from mankind. In order that men should embrace the truth- not in the vague way they did in childhood, nor in the one-sided and perverted way presented to them by their religious and scientific teachers, but embrace it as their highest law-the complete liberation of this truth from all and every superstition (both pseudo-religious and pseudo-scientific) by which it is still obscured is essential: not a partial, timid attempt, reckoning with traditions sanctified by age and with the habits of the people - not such as was effected in the religious sphere by Guru-Nanak, the founder of the sect of the Sikhs, and in the Christian world by Luther, and by similar reformers in other religions-but a fundamental cleansing of religious consciousness from all ancient religious and modern scientific superstitions. 가라앉는 배를 구하려면, 바닥의 짐을 배 바깥으로 던져버림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이전에 필요하였겠지만 이제 배를 가라앉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인 것은 인류로부터 행복에 관한 진리를 가리는 과학적 미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반드시 진리를 껴안아야 합니다 - 유년기에 그랬던 모호한 방법 안에서가 아니라, 또한 편파적이며 왜곡된 방법 안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지고의 율법으로 껴안아야 합니다 - 모든 그리고 각각의 진리를 흐리고 있는 미신들(유사 종교 및 유사 과학)로부터 이 진리의 완전한 해방은 필수적입니다: 연령과 사람들의 습관들에 의해서 인정되는 전승들에 의존하면서 편파적이며, 우유부단한 시도가 아니라 - 시크교의 창시자인 Guru-Nanak에 의한, 그리고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는 Luther에 의한, 그리고 다른 종교들에서 유사한 개혁가들에 의한 종교적 범주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은 것이 아니라 - 그러나 모든 고대의 종교적 및 현대의 과학적 미신들로부터의 종교적 인식의 근본적인 정화를 말합니다.  
If only people freed themselves from their beliefs in all kinds of Ormuzds, Brahmas, Sabbaoths, and their incarnation as Krishnas and Christs, from beliefs in Paradises and Hells, in reincarnations and resurrections, from belief in the interference of the Gods in the external affairs of the universe, and above all, if they freed themselves from belief in the infallibility of all the various Vedas, Bibles, Gospels, Tripitakas, Korans, and the like, and also freed themselves from blind belief in a variety of scientific teachings about infinitely small atoms and molecules and in all the infinitely great and infinitely remote worlds, their movements and origin, as well as from faith in the infallibility of the scientific law to which humanity is at present subjected: the historic law, the economic laws, the law of struggle and survival, and so on-if people only freed themselves from this terrible accumulation of futile exercises of our lower capacities of mind and memory called the 'Sciences', and from the innumerable divisions of all sorts of histories, anthropologies, homiletics, bacteriologics, jurisprudences, cosmographies, strategies-their name is legion-and freed themselves from all this harmful, stupifying ballast-the simple law of love, natural to man, accessible to all and solving all questions and perplexities, would of itself become clear and obligatory. 오직 사람들이 모든 종류의 Ormuzd, Brahma, Sabbaoth, 그리고  Krishna Christ로서 그들의 화신으로부터, 낙원들과 지옥들에 대한, 윤회들과 부활들에 대한 믿음들로부터, 우주의 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졌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일 그들이 스스로 모든 다양한 Veda, Bible, Gospel, Tripitaka, Koran, 및 유사한 것들의 무류성(無謬性)으로부터 자유로워 졌으며, 그리고 또한 무한히 작은 원자들 및 분자들에 대한 그리고 모든 무한히 큰 먼 세상들, 그들의 움직임들 및 기원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현재 인류가 종속되어 있는 과학적 법칙 - 역사적 법칙, 경제적 법칙, 투쟁 및 생존의 법칙, 등등 - 의 무류성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워 졌다면, 만일 사람들이 오직 '과학들'이라고 불리는 마음과 기억에 관한 우리의 저질스런 능력들의 쓸모 없는 행사들에 관한 이처럼 무서운 축적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종류의 역사들, 인류학들, 설교학들, 세균학들, 법학들, 천지학들, 전략들로부터 - 그것들의 이름은 군단(legion)입니다 - 자유로워 졌다면, 그리고 이 모든 해로우며, 어리석게 하는 바닥짐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 졌다면 - 단순한 사랑의 율법은, 사람에게 자연적이며,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으며 모든 문제들과 혼란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음으로써, 저절로 명백해지고 당연한 것이 될 것입니다.
   

VII

VII

Children, look at the flowers at your feet; do not trample upon them. Look at the love in your midst and do not repudiate it. KRISHNA. 자녀들아, 너희 발 아래의 꽃들을 보라; 그것들을 밟지 말라. 너희들 안에 있는 사랑을 보라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지 말라. KRISHNA.

There is a higher reason which transcends all human minds. It is far and near. It permeates all the worlds and at the same time is infinitely higher than they.

A man who sees that all things are contained in the higher spirit cannot treat any being with contempt.

For him to whom all spiritual beings are equal to the highest there can be no room for deception or grief.

Those who are ignorant and are devoted to the religious rites only, are in a deep gloom, but those who are given up to fruitless meditations are in a still greater darkness.

UPANISHADS, FROM VEDAS.

모든 인간의 마음들을 초월하는 더욱 더 높은 이성이 있다. 그것은 멀리에 그리고 가까이에 있다. 그것은 모든 세상들에 스며들고 동시에 그들 보다 무한히 높다. 모든 사물이 더 높은 영에 담겨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른 존재를 비웃으며 대할 수 없다. 모든 영적인 존재들이 지고의 것과 동등한 그에게 있어서 기만이나 슬픔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무지하며 오직 종교적 의식들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깊은 어둠에 있으나, 헛된 명상들에 빠진 사람들은 훨씬 더 커다란 암흑 안에 있다. UPANISHADS, FROM VEDAS.
   
Yes, in our time all these things must be cleared away in order that mankind may escape from self- inflicted calamities that have reached an extreme intensity. Whether an Indian seeks liberation from subjection to the English, or anyone else struggles with an oppressor either of his own nationality or of another-whether it be a Negro defending himself against the North Americans; or Persians, Russians, or Turks against the Persian, Russian, or Turkish governments, or any man seeking the greatest welfare for himself and for everybody else -they do not need explanations and justifications of old religious superstitions such as have been formulated by your Vivekanandas, Baba Bharatis, and others, or in the Christian world by a number of similar interpreters and exponents of things that nobody needs; nor the innumerable scientific theories about matters not only unnecessary but for the most part harmful. (In the spiritual realm nothing is indifferent: what is not useful is harmful.) What are wanted for the Indian as for the Englishman, the Frenchman, the German, and the Russian, are not Constitutions and Revolutions, nor all sorts of Conferences and Congresses, nor the many ingenious devices for submarine navigation and aerial navigation, nor powerful explosives, nor all sorts of conveniences to add to the enjoyment of the rich, ruling classes; nor new schools and universities with innumerable faculties of science, nor an augmentation of papers and books, nor gramophones and cinematographs, nor those childish and for the most part corrupt stupidities termed art-but one thing only is needful: the knowledge of the simple and clear truth which finds place in every soul that is not stupefied by religious and scientific superstitions-the truth that for our life one law is valid-the law of love, which brings the highest happiness to every individual as well as to all mankind. Free your minds from those overgrown, mountainous imbecilities which hinder your recognition of it, and at once the truth will emerge from amid the pseudo-religious nonsense that has been smothering it: the indubitable, eternal truth inherent in man, which is one and the same in all the great religions of the world. It will in due time emerge and make its way to general recognition, and the nonsense that has obscured it will disappear of itself, and with it will go the evil from which humanity now suffers.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에 극도에 달한, 인류가 자초한 재앙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으려면, 이 모든 것들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인도인이 영국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추구하든, 아니면 다른 누군가 자기 자신의 국적의 또는 다른 국적의 압제자들과 투쟁하든지 - 그것이 북아메리카 인들에 스스로 대항하는 한 흑인이든지, 아니면 페르시아, 러시아, 터어키 정부들에 맞서는 페르시아인들, 러시아인들, 터어키인 들이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 및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가장 큰 행복을 찾고 있는 어떤 사람이든지 - 그들은 당신들의 Vivekanandas, Baba Bharatis, 및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또는 그리스도교 세상에서 많은 아무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유사한 해석가들 및 해설자들에 의해서,  공식화되어 왔던 것과 같은 오래 묵은 종교적 미신들에 대한 해석들이나 정당화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물질들에 관한 무수한 과학적 이론들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해로운 것들입니다. (영적인 영역에서 아무것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유용하지 않은 것은 해로운 것입니다.)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및 러시아인을 위한 것처럼 인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헌법들 그리고 혁명들이 아니며, 모든 종류들의 회담들 및 의회들도 아니며, 해저 항해 및 공중 항해를 위한 많은 정교한 장치들도 아니며, 강력한 폭발물들도 아니며, 또한 부유한, 지배 계층들의 즐거움에 기여할 모든 종류의 편의 시설들도 아니며; 수업이 많은 학부를 자랑하는 새로운 학교들 및 대학교들도 아니며, 신문들과 서적들의 증가도 아니며, 축음기들 및 영사기들도 아니며, 예술이라는 용어를 지닌 유치하고 대체적으로 타락한 어리석은 짓들도 아닙니다 - 그러나 오직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종교적 및 과학적 미신들에 의하여 마비되지 않은 모든 영혼 안에 자리잡는 단순하며 명백한 진리의 지식 - 우리의 삶의 위해 한 가지 율법이 정당하다는 진리 - 사랑의 율법으로서, 이는 제각기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지고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진리의 인식을 방해하는 그것들처럼 무성하며, 산과 같은 어리석은 짓거리들로부터 당신의 마음들을 자유롭게 하십시오, 그러면 진리는 당장 그것을 질식시켜 왔던 유사-종교적인 기만 가운데로부터 솟아날 것입니다: 이 진리는, 사람 안에 고유한 의심할 여지 없는, 영원한 진리이며, 이것은 세상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에서 하나이자 동일한 것입니다. 그것은 때가 되면 나타나서 보편적인 인식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흐리게 하였던 기만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악도 가버릴 것입니다. 
   
Children, look upwards with your beclouded eyes, and a world full of joy and love will disclose itself to you, a rational world made by My wisdom, the only real world. Then you will know what love has done with you, what love has bestowed upon you, what love demands from you. KRISHNA. 자녀들이여, 너희의 구름 덮인 눈으로  위를 바라보라, 그러면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그것은 나의 지혜로 만들어진 합리적인 세상이며, 유일한 실제 세상이니라.  그러면 너희는 사랑이 너희에게 행한 것을, 사랑이 너희에게 주었던 것을, 사랑이 너희에게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것이니라.  KRISHNA.
   
YASNAYA POLYANA.

December 14th, 1908.

야스나야 폴리야나

1908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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