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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DHI LETTERS

간디에게 보낸 편지들


Written  by M. K. GANDHI & Leo Tolstoy

From Recollections & Essays by Leo Tolstoy. Oxford University Press: London, New York, Toronto, 1937. (pp. 433-439)

To Gandhi. 간디에게.

I HAVE just received your very interesting letter, which gave me much pleasure. God help our dear brothers and co-workers in the Transvaal! Among us, too, this fight between gentleness and brutality, between humility and love and pride and violence, makes itself ever more strongly felt, especially in a sharp collision between religious duty and the State laws, expressed by refusals to perform military service. Such refusals occur more and more often.

나는 방금 당신의 매우 흥미 있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트란스발에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 그리고 동료들을 도우소서! 우리들 안에서도, 역시, 이 같은 온유함과 잔인함 사이의, 겸손과 사랑 및 자만과 폭력 사이의 싸움이, 특별히 종교적 의무와 국가의 법률들 사이의 첨예한 충돌에서, 병역 수행의 거부로 나타나면서,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I wrote the 'Letter to a Hindu', and am very pleased to have it translated. The Moscow people will let you know the title of the book on Krishna. As regards 're-birth' I for my part should not omit anything, for I think that faith in a re-birth will never restrain mankind as much as faith in the immortality of the soul and in divine truth and love. But I leave it to you to omit it if you wish to. I shall be very glad to assist your edition. The translation and diffusion of my writings in Indian dialects can only be a pleasure to me. 나는 '인도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번역되도록 하여서 매우 기쁩니다. 모스크바 사람들이 크리슈나에 대한 책의 제목을 당신께 알려 드릴 것입니다. '부활'과 관련하여 나로서는 어느 것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부활에 관한 신앙이 영혼 불멸에 관한 그리고 하늘의 진리 및 사랑에 관한 신앙과 마찬가지로 인류를 결코 억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그것을 생략하는 것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나는 당신의 번역판을 돕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인도 방언들로 나의 작품들의 번역과 배포는 오로지 나에게는 즐거움입니다.
The question of monetary payment should, I think, not arise in connexion with a religious undertaking. 금전적 지불 문제는, 나의 생각은, 종교적 사업과 관련하여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I greet you fraternally, and am glad to have come in touch with you. 나는 우애로서 당신을 반기며, 당신과 연락하였기에 즐겁습니다.
LEO TOLSTOY. 레오 톨스토이

(Undated, but probably written in March 1910.)

(날짜가 없으나, 아마도 1910 년 3 월에 쓰여졌음)
   
   
To Count Leo Tolstoy, Yasnaya Polyana, Russia. 레오 톨스토이 백작님께
러시아, 야스나야 폴리야나

JOHANNESBURG, 4th April 1910.

요하네스버그, 1910 년 4 월 4 일

Dear Sir,

선생님께,

You will remember that I wrote to you from London, where I stayed in passing. As your very devoted adherent I send you together with this letter, a little book I have compiled in which I have translated my own writings from Gujarati. It is worth noting that the Indian government confiscated the original. For that reason I hastened to publish the translation. I am afraid of burdening you, but if your health permits and you have time to look through the book I need not say how much I shall value your criticism of it. At the same time I am sending you a few copies of your 'Letter to a Hindu' which you allowed me to publish. It has also been translated into one of the Indian dialects.

제가 지나가면서 머물렀던 런던에서 선생님께 편지하였던 것을 선생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선생님의 매우 헌신적인 신봉자로서 저는 이 편지와 함께, 저의 작품들을 구자라티어로부터 번역하여 엮은 조그만 책을 보내드립니다. 인도 정부가 원본을 압수 하였음을 알려 드림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저는 번역본을 서둘러 발행하였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심려를 끼쳐드릴까 송구스럽사오나, 만일 선생님의 건강이 허락하며 선생님께서 그 책을 두루 살펴볼 시간이 있으시면, 그것에 대한 선생님의 비평을 제가 얼마나 가치를 두어야 할지 저로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출판할 것을 제게 허락하신 선생님의 '인도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사본 몇 부를 선생님께 보내드립니다. 그것은 또한 인도의 방언들 중의 하나로 번역되었습니다. 

Your humble servant, M. K. GANDHI.

선생님의 천한 종, M. K. 간디
   

To Mahatma Gandhi.

마하트마 간디에게.

YASNAYA POLYANA. 8th May 1910.

야스나야 폴리야나. 1910 년 5 월 8 일

Dear friend,

사랑하는 친구여,

I have just received your letter and your book, Indian Home Rule.

나는 막 당신의 편지와 당신의 책, 인도의 가정 규칙을 받았습니다.

I have read the book with great interest, for I consider the question there dealt with-Passive Resistance-to be of very great importance not only for Indians but for the whole of mankind.

나는 그 책을 굉장한 관심으로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에서 다루는 문제인, 수동적 저항이, 인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전체 인류에게 매우 커다란 중요성을 띤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I cannot find your first letter, but in looking for it have come upon Doke's biography, which much attracted me and enabled me to know you and understand you better.

나는 당신의 먼저 번 편지를 찾을 수 없지만, 그것을 찾다가  Doke의 전기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에 많이 끌렸으며, 그것이 당신을 알게 하고 당신의 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I am not very well at present, and therefore refrain from writing all that is in my heart about your book and about your activity in general, which I value highly. I will however do so as soon as I am better.

나는 현재 그렇게 편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책에 관해서 그리고 당신의 활동 전부에 관해서, 나의 가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쓰기를 억누르고 있으나, 나는 그것을 매우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아지는 대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Your friend and brother, LEO TOLSTOY.

 

당신의 친구이며 형제, 레오 톨스토이.
   

To Gandhi, Johannesburg, Transvaal, South Africa.

간디에게
요하네스버그, 트란스발, 남아프리카.

KOCHETY. 7th September 1910.

코체티, 1910년 9월 10일

I received your journal, Indian Opinion, and was glad to see what it says of those who renounce all resistance by force, and I immediately felt a wish to let you know what thoughts its perusal aroused in me.

나는 당신의 잡지, 인도인의 의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폭력에 의한 모든 저항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라 말하는지 알고서 기뻤습니다, 그리고 나는 즉시 그것의 통독이 내 안에서 어떤 생각들을 일깨웠는지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바람을 느꼈습니다.
The longer I live-especially now when I clearly feel the approach of death-the more I feel moved to express what I feel more strongly than anything else, and what in my opinion is of immense importance, namely, what we call the renunciation of all opposition by force, which really simply means the doctrine of the law of love unperverted by sophistries. Love, or in other words the striving of men's souls towards unity and the submissive behaviour to one another that results therefrom, represents the highest and indeed the only law of life, as every man knows and feels in the depths of his heart (and as we see most clearly in children), and knows until he becomes involved in the lying net of worldly thoughts. This law was announced by all the philosophies- Indian as well as Chinese, and Jewish, Greek and Roman. Most clearly, I think, was it announced by Christ, who said explicitly that on it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More than that, foreseeing the distortion that has hindered its recognition and may always hinder it, he specially indicated the danger of a misrepresentation that presents itself to men living by worldly interests- namely, that they may claim a right to defend their interests by force or, as he expressed it, to repay blow by blow and recover stolen property by force, etc., etc. He knew, as all reasonable men must do, that any employment of force is incompatible with love as the highest law of life, and that as soon as the use of force appears permissible even in a single case, the law itself is immediately negatived. The whole of Christian civilization, outwardly so splendid, has grown up on this strange and flagrant- partly intentional but chiefly unconscious-misunderstanding and contradiction. At bottom, however, the law of love is, and can be, no longer valid if defence by force is set up beside it. And if once the law of love is not valid, then there remains no law except the right of might. In that state Christendom has lived for 1,900 years. Certainly men have always let themselves be guided by force as the main principle of their social order. The difference between the Christian and all other nations is only this: that in Christianity the law of love had been more clearly and definitely given than in any other religion, and that its adherents solemnly recognized it. Yet despite this they deemed the use of force to be permissible, and based their lives on violence - so that the life of the Christian nations presents a greater contradiction between what they believe and the principle on which their lives are built: a contradiction between love which should prescribe the law of conduct, and the employment of force, recognized under various forms-such as governments, courts of justice, and armies, which are accepted as necessary and esteemed. This contradiction increased with the development of the spiritual life of Christianity and in recent years has reached the utmost tension.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 특별히 내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분명히 느끼는 지금 - 나는 더욱 내가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게 느끼는 것을, 그리고 나의 생각에서 막대하게 중요한 것을, 즉 소위 폭력에 의한 모든 저항의 포기로서, 진실로 궤변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사랑의 율법의 교리를 의미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나는 것을 느낍니다. 사랑은, 아니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의 영혼들의 합일을 향한 노력 및 그로부터 나오는 서로에 대해 순종하는 태도는, 제각기 사람이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가장 명백히 보듯이) 알고 느끼며, 그리고 그가 세상의 사상들로 널려 있는 그물에 걸려들기까지 알고 있듯이, 삶의 가장 숭고한 그리고 사실상 유일한 율법을 대표합니다. 이 율법은 모든 철학들 - 인도 뿐만 아니라 중국, 그리고 유대, 그리스 및 로마의 - 에 의해서 선언되었습니다. 내가 생각건대 가장 명백하게 선언된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였으며, 그는 명시적으로 말하기를, 바로 그것 위에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이 부가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그것의 인식을 방해했으며 언제나 그것을 방해할 왜곡을 예견하고서, 그는 특히 세상의 이익들에 의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오역(誤譯) - 즉, 그들이 폭력에 의하여 그들의 이익을 방어하거나, 또는, 그가 그것을 표현한 것처럼, 주먹에는 주먹으로 갚으며 도난 당한 재산을 폭력에 의하여 되찾을 권리 등등을 주장할 것이라는 - 의 위험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사리를 아는 사람들이 반드시 그러하듯이, 어떠한 폭력의 사용이라도 삶의 최고의 법으로서 사랑과 양립할 수 없음을, 그리고 폭력의 사용이 심지어 단 하나의 경우에라도 허용되는 것처럼 보이자마자, 그 율법 자체는 즉각 부정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체 그리스도 문명은, 외관상 그토록 화려하지만, 이처럼 이상하며 명백한 - 일부는 고의적이지만 주로 무의식적인 - 오해와 모순 위에 성장하였습니다. 뿌리에서는, 그러나, 사랑의 율법은, 만일 폭력에 의한 방어가 나란히 세워진다면, 더 이상 유효하지도, 유효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단 사랑의 율법이 유효하지 않다면, 힘의 정의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법이 남지 않습니다. 분명히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의 사회 질서의 주된 원리로서 힘에 의하여 이끌려 왔습니다. 그리스도교 국가와 다른 모든 국가들의 사이의 차이는 오직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사랑의 율법은 다른 어떤 종교들에서보다도 더욱 명백히 그리고 단호하게 주어졌으며, 그것의 신봉자들은 엄숙하게 그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폭력의 사용을 허용된다고 여겼으며, 그들의 삶을 폭력 위에 기초하였습니다 - 그래서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삶은 그들이 믿는 것과 그들의 삶이 세워진 원리 사이에서 더 큰 모순 - 행위의 율법을 규정하는 사랑과 폭력의 사용 사이의 모순으로서, 다양한 형태들 - 예를 들면 정부들, 재판 법정들, 그리고 군대들 - 을 제기합니다. 이런 모순은 그리스도교의 영적인 삶의 발전에 따라서 증가하였으며 최근 몇 년 동안 최고도의 긴장에 도달했습니다.

The question now is, that we must choose one of two things-either to admit that we recognize no religious ethics at all but let our conduct of life be decided by the right of might; or to demand that all compulsory levying of taxes be discontinued, and all our legal and police institutions, and above all, military institutions, be abolished.

문제는 이제, 우리는 반드시 두 가지 - 우리가 아무런 종교적 윤리를 인식하지 않고서 우리의 삶의 행위가 힘의 정의에 의해서 결정되도록 인정하는 것; 또는 모든 강제적인 세금 부과가 중단될 것, 그리고 우리의 모든 법적 및 경찰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사제도가 폐지될 것을 요구하는 것 -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This spring, at a scripture examination in a Moscow girls' school, first their religious teacher and then an archbishop who was also present, questioned the girls on the ten commandments, especially on the sixth. After the commandments had been correctly recited the archbishop sometimes put a question, usually: 'Is it always and in every case forbidden by the law of God to kill?' And the unfortunate girls, misled by their instructor, had to answer and did answer: 'Not always, for it is permissible in war and at executions.' When, however, this customary additional question-whether it is always a sin to kill-was put to one of these unfortunate creatures (what I am telling you is not an anecdote, but actually happened and was told me by an eyewitness) the girl coloured up and answered decidedly and with emotion - 'Always!' And despite all the customary sophistries of the archbishop, she held steadfastly to it-that to kill is under all circumstances forbidden even in the Old Testament, and that Christ has not only forbidden us to kill, but in general to do any harm to our neighbour. The archbishop, for all his majesty and verbal dexterity, was silenced, and victory remained with the girl.

이번 봄, 모스크바의 여자 학교에서 있은 성경 시험에서, 처음엔 그들의 종교 선생이 그리고 다음엔 역시 참석했던 대주교가, 여자 아이들에게 십계명을, 특히 6 번째 계명에 대해 물었습니다. 계명들이 정확이 암송된 뒤에 대주교는 때때로 질문을 하였으며, 주로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살인하는 것이 언제나 그리고 어느 경우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에서 금지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불행한 여자 아이들은, 그들의 교사들에 의해서 잘못 인도되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만 했으며 대답했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쟁 및 사형들에서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상적인 추가 질문 - 살인하는 것이 언제나 죄인가 - 이 이들 불쌍한 여자 아이들 중의 하나에게 내려졌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일화가 아니라, 사실로 발생하였으며 어떤 목격자에 의해서 내게 전해졌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얼굴을 붉혔으며 단호하게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면서 대답했습니다 - '언제나 금지합니다!' 그리고 대주교의 모든 통상적인 궤변들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확고하게 그것을 주장하였습니다 - 즉, 살인하는 것은 모든 상황들에서 심지어 구약성서에서도 금지되며, 그리스도는 우리가 살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우리의 이웃에게 어떤 해로움도 행하는 것을 금지한 것입니다.

Yes, we may write in the papers of our progress in mastery of the air, of complicated diplomatic relation, of various clubs, of discoveries, of all sorts of alliances, and of so-called works of art, and we can pass lightly over what that girl said. But we cannot completely silence her, for every Christian feels the same, however vaguely he may do so. Socialism, Communism, Anarchism, ' Salvation Armies, the growth of crime, freedom from toil, the increasingly absurd luxury of the rich and increased misery of the poor, the fearfully rising number of suicides-are all indications of that inner contradiction which must and will be resolved. And, of course, resolved in such a manner that the law of love will be recognized and all reliance on force abandoned. Your work in the Transvaal, which to us seems to be at the end of the earth, is yet in the centre of our interest and supplies the most weighty practical proof, in which the world can now share, and not only the Christian but all the peoples of the world can participate.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문들에서 공중의 정복에 대한 우리의 진보에 대하여, 복잡한 외교 관계에 대하여, 다양한 클럽들에 대하여, 모든 종류의 동맹들에 대하여, 그리고 소위 예술 작품들에 대하여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자 아이가 말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각기 그리스도인은, 그가 아무리 모호하게 느낄지라도, 똑같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구세군, 범죄의 증가, 고된 일에서의 해방, 부유한 자들의 증가하는 불합리한 사치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증가하는 불행, 무섭게 증가하는 자살들의 숫자 - 이 모든 것들은 반드시 그리고 미래에 해결되어야 할 그와 같은 내적인 모순의 증거들입니다. 그리고, 물론, 사랑의 율법이 인정되는 방식으로 해결된다면, 폭력에 대한 모든 의존은 포기될 것입니다. 트란스발에서의 당신의 활동은,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지상의 반대 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관심의 중심에 있으며 가장 무거운 실천적인 증명을 제공하며, 그것에 이제는 세계가 함께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I think it will please you to hear that here in Russia, too, a similar movement is rapidly attracting attention, and refusals of military service increase year by year. However small as yet is with you the number of those who renounce all resistance by force, and with us the number of men who refuse any military service-both the one and the other can say: God is with us, and God is mightier than man.

나는 이곳 러시아에서도, 역시, 비슷한 운동이 급속하게 주의를 끌고 있으며, 병역 거부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듣는다면 당신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당신에게 있어서 폭력에 의한 모든 저항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병역도 거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직은 적다고 하더라도, 전자와 후자는 공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은 사람보다 강하시다

In the confession of Christianity-even a Christianity deformed as is that taught among us-and a simultaneous belief in the necessity of armies and preparations to slaughter on an ever-increasing scale, there is an obvious contradiction that cries to heaven, and that sooner or later, but probably quite soon, must appear in the light of day in its complete nakedness. That, however, will either annihilate the Christian religion, which is indispensable for the maintenance of the State, or it will sweep away the military and all the use of force bound up with it-which the State needs no less. All governments are aware of this contradiction, your British as much as our Russian, and therefore its recognition will be more energetically opposed by the governments than any other activity inimical to the State, as we in Russia have experienced and as is shown by the articles in your magazine. The governments know from what direction the greatest danger threatens them, and are on guard with watchful eyes not merely to preserve their interests but actually to fight for their very existence.

그리스도교 - 심지어 우리들 가운데서 가르쳐진 것과 같이 기형이 되어버린 그리스도교 - 의 고백 안에 그리고 동시에 꾸준히 증가하는 규모로 살육하기 위한 군대의 필요성에 대한 믿음 안에는, 하늘까지 들리는, 그리고 조만간, 그러나 아마 매우 빨리, 백주에 그 완전한 실체가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 명백한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의 유지에 없어서는 안될 그리스도교를 전멸시켜버리거나, 아니면 그 모순이 군대와 그것에서 나오는 모든 폭력- 국가는 그것의 사용을 결코 적게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을 쓸어버릴 것입니다. 모든 정부들은, 당신의 영국이든 우리의 러시아든, 이런 모순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의 인정은 국가에 해로운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러시아의 우리가 경험하였듯이 그리고 당신의 잡지의 기사들에 의해서 보여지듯이, 정부들에 의해서 강력히 저항을 받을 것입니다. 정부들은 어떤 방향에서 가장 큰 위험이 그들을 위협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들의 이익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존재 자체를 위하여 싸우기 위하여 주의 깊은 눈으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Yours etc., LEO TOLSTOY.

레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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